스포츠뉴스
[24-10-30 13:59:00]
조혜정 전 GS칼텍스 서울 KIXX배구단 감독이 암 투병 끝에 30일 새벽 5시40분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71세.
조 전 감독은 지난해 12월 췌장암 진단을 받고 분당 서울대 병원서 치료를 받아 왔다. 지난 21일 치료를 중단하고 경기도 화성시 동탄 집으로 귀가했다.
빈소는 서울 일원동 삼성서율병원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1월1일 오전 6시30분.
조 전 감독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한국여자 배구의 동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한 레전드 스타 출신 배구인. 숭의여고 3학년부터 대표팀에 발탁돼 1970년 방콕 아시안 게임,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활약했다. 1974년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서도 은메달을 수상했다.
현역시절 1m65의 작은 신장에도 불구, 엄청난 점프력과 순발력으로 높게 날아 강력한 스파이크를 시원하게 날리던 조 전 감독은 '나는 작은 새(Flying little bird)'란 애칭으로 불리던 선수. 국세청과 대농(미도파)를 거치며 선수생활을 하던 그는 1977년 국내무대에서 은퇴하고 현대건설에서 코치를 지내다 1979년 이탈리아 안코나에서 2년간 플레잉코치로 활약한 뒤 1981년 선수 생활을 접었다.
은퇴 후 송원여자고등학교 배구팀 코치, 한국비치발리볼연맹 사무국장, 한국배구연맹 경기감독관 등을 역임한 고인은 2010년 GS칼텍스 사령탑을 맡아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의 여성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조혜정 전 감독은 지난 1981년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조창수 전 감독 대행과 결혼해 2녀를 두고 있다. 조윤희, 조윤지 두 딸은 현재 골프 선수, 골프 지도자로 활약하고 있다.
고인은 지난 21일 치료 중단 후 집으로 돌아와 “정신이 이만큼이라도 있을 때 해야 할 일“이라며 '배구에게 보내는 고별인사'를 본사에 보내왔다.
다음은 '작은새' 조혜정 전 감독이 생전에 작성한 '배구야 안녕!'이란 고별사 전문.
배구야, 안녕!
배구야, 넌 내가 만났던 친구 중 가장 나와 케미가 맞았던 친구야.
그야말로 우린 베프(베스트 프랜드)였지.
내가 너를 처음 만났을 때가 열세 살 중딩 시절이었으니 우리의 인연은 벌써 반세기가 훌쩍 지나 60년이 다 돼가는구나.
여느 친구들이 그랬듯 너와 내가 그 긴 세월을 함께하는 동안 왜 갈등이 없었겠니.
때론 내가 너를, 또 가끔은 네가 나를 힘들게 한 적도 있었지.
그 때마다 너와의 관계를 끊어버릴까 생각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
그러나 결국은 너도 나를 버리지 못했고, 나도 널 버릴 용기가 없었어.
그렇게 이어온 끈질긴 인연이 오늘에 이르렀네.
그런데 배구야,
이제 난 너와 더 이상 친구를 할 수가 없게 됐단다.
세상에 수많은 친구들 중 너에게 만은 내가 직접 이별통보를 해 주는 게 그동안 나와 함께 해 준 너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해서 고통을 참으면서 이 편지를 쓴단다.
작년 말 발견하게 된 췌장의 암세포가 날 삼키려나 봐.
여러 암세포 중 췌장암이 제일 못된 놈이란 건 얘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내가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1m70도 채 안 되는 작은 키로 배구도 했는데 그깟 놈 하나 못 이기겠어'라며 지난 1년 여를 호기롭게 맞서 싸웠지만 세상에는 안 되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게 불과 며칠 전이야.
“죄송합니다, 안될 것 같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이 마지막 진단에서 미안해 하면서 내게 전한 말이야.
이제 내게 주어진 시간은 두달 남짓인가 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지만, 아무 것도 이 현실을 되돌려놓을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난 모든 걸 받아들이기로 했단다.
이 단호한 결심은 오로지 나의 몫이야.
사랑하는 남편, 자랑스러운 딸들마저도 이 고통에 관한 한 국외자일 뿐이야.
그래서 내 스스로 내 삶을 정리하기로 했단다.
다른 모든 것들은 남아 있는 내 가족들이 잘 알아서 하리라 믿고 배구, 너에게 만은 내가 직접 이별통보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내 기력이 더 쇠하기 전에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솔직히 난 그동안 너와 함께 하면서 내가 먼저 널 떠나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 조차 해 본적이 없었기에 너에게 조금은 미안한 게 사실이야.
배구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는 더 이상 너의 친구로 남아 있을 수가 없단다.
난 조만간 어디를 가야 해. 너와 함께 할 수 없는 저 머~언 곳으로.
넌 내가 없어도 또 다른 많은 친구들이 네 곁에 있어 외롭지 않을 거야.
섭섭하더라도 이제 나를 놓아 주렴.
나는 그동안 너를 만나 참으로 즐거웠고, 행복했어.
몬트리올에서, 이탈리아에서 너와 함께 한 여행은 내 인생의 꽃이었어.
그리고 대한민국 프로무대에서 너와 함께한 그 시간은 내 인생 최고의 데이트였어.
그까짓 암 덩어리 하나 이기지 못하고 너와의 이별을 고해야 하는 내가 조금은 밉지만 너와 내가 만나 즐겼던 한순간 한순간을 우리들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갈게.
반세기가 넘는 너와 나의 관계가 어찌 이 한 장의 이별통보로 청산이 되겠니?
그러나 이제 내겐 너를 더 오래 붙잡고 있을 힘이 없단다.
고마웠던 내 친구, 배구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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