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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초보 같지 않은 초보'.

2024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일궈낸 KIA 타이거즈 이범호 감독이 그랬다.

갑작스럽게 지휘봉을 잡았다. 호주 스프링캠프 출발 직전 감독 교체 결정이 내려졌다. 막내 코치 신분으로 불과 며칠 전 코치진 앞에서 올 시즌 방향성을 브리핑했던 그에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던 상황. 캠프지 도착 후 선수들을 추스르고 본연의 임무를 다하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심재학 단장으로부터 감독직 제의를 받았고, 졸지에 막내 코치에서 감독이 됐다. 프로야구 사상 첫 1980년대생 감독은 이렇게 탄생했다.

기대와 우려의 시선이 교차했다.

선수 시절부터 '감독감' 소리를 들을 정도로 호탕한 성격과 리더십, 야구 식견은 인정 받았다. 그러나 은퇴 후 코치 생활 5년차에 접어든 시점. 감독은 무리라는 시선도 있었다. 캠프 중반에 갑작스럽게 지휘봉을 잡았기에 혼란은 더 클 것이란 평가도 이어졌다.

이 감독은 '웃음꽃 야구'를 전면에 내걸었다. “선수들이 항상 웃으면서 그라운드에서 즐겁게 플레이 할 수 있게 웃음꽃 피는 분위기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분위기'는 호성적의 필수조건. 모두가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말로만 되는 게 아니다. 수 십명이 1년 내내 동고동락하면서도 개인 성적과 무관치 않은 야구 선수단 특성을 떠올리면 더 그렇다.

이 감독은 행동으로 실천했다.

훈련 때마다 그라운드 곳곳을 돌았다. 투수-야수 가리지 않고 농을 치기도, 때론 진지한 격려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말을 꺼내기 전엔 스스로 장고를 거쳤고, 의견이 부딪칠 땐 상대 의견을 듣고 수긍할 만하다 판단하면 받아들였다. 고집과는 거리가 멀었다. 최형우는 “감독님과 의견이 부딪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대부분 감독님이 져준다. 선수들 입장에선 그런 부분이 감사한 순간이 있다“고 증언했다.

물론 항상 '져 준 건' 아니었다. 위기 땐 이름 값에 구애받지 않고 에이스를 마운드에서 내렸고, 연속 실책이 나올 땐 대체 불가 유격수를 빼는 강단도 선보였다. 경우의 수를 치밀하게 계산한 뒤, 결정을 내리면 뒤돌아보지 않고 전진했다.

스트레스가 없는 건 아니었다. 선발 투수 줄부상, 2위 추격, 외국인 선수 문제 등 시즌 내내 이어진 변수는 밤잠을 설치게 했다. 이럼에도 더그아웃에선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

이 감독은 “경기 중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들고, 마음 속에 불이 날 때도 있다“면서도 “나 한 사람이 참고 고민해서 해결되고, 그래서 팀이 좋은 방향으로 간다면 그걸로 족하다“며 미소 지었다.

이번 한국시리즈는 이 감독이 추구한 '웃음꽃 야구'의 결정체였다.

한국시리즈에 대비하는 KIA 선수단의 모습엔 일말의 불안감도 없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빨리 시리즈가 시작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차지한 '원팀'의 자신감, 상호 신뢰가 원동력이었다. 이 감독은 시리즈 내내 평정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과감한 결단을 내리며 흔들림 없이 팀을 이끌었다. 그 결과 V12라는 값진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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