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뉴스
[24-10-31 08:45:00]
[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나를 이해해줬으면….“
위르겐 클롭 전 리버풀 감독의 속내였다. 클롭이 침묵을 깨고 현장으로 돌아왔다. 놀랍게도 감독이 아닌 행정직이었다. 에너지 음료 회사인 레드불은 9일(한국시각) 홈페이지를 통해 “클롭이 2025년 1월 1일부터 레드불의 글로벌 사커 책임자를 맡는다. 리버풀을 그만둔 이후 처음 임명되는 자리“라고 발표했다. 이어 “클롭의 임무는 레드불 글로벌 사커의 네트워크를 관장하는 일“이라며 “클럽들의 매일 일정에 관여하지 않지만 전략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레드불의 철학을 발전시키는 일을 하게 된다. 더불어 선수 스카우트와 사령탑들의 교육에도 기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레드불의 기업 프로젝트 및 투자 부문 CEO인 올리버 민츨라프는 “클롭이 레드불의 국제 축구를 총괄할 예정이며, 이번 인사는 레드불 축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영입이라는 점에서 매우 자랑스럽다“는 말로 의미를 부여했다. “클롭은 세계 축구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뛰어난 실력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인물이다. 그는 축구 대표팀 수장으로서 국제 축구에 대한 참여와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판도를 바꿀 것“이라면서 “핵심 분야에서 가치 있고 결단력 있는 추진력을 발휘해 클럽을 집단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더욱 발전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클롭은 “거의 25년간 축구계에 몸담았던 제가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돼 이보다 더 기쁠 수 없다“는 소감을 전했다. “역할은 바뀌었지만 축구와 축구를 만드는 사람들을 향한 저의 열정은 변하지 않았다. 글로벌 수준의 레드불에 합류해 우리가 가진 놀라운 축구 재능을 개발하고 향상시키고 지원하고 싶다“며 “레드불이 보유한 엘리트 자산과 경험을 활용하는 것부터 다른 스포츠와 다른 산업에서 배우는 것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달성할 수 있다. 우리는 함께 무엇이 가능한지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 역할은 주로 코치와 경영진을 위한 멘토 역할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특별하고 미래지향적인 조직의 한부분이 될 것“이라고 했다.
클롭의 선택에 독일 현지에서는 거센 비판이 나오고 있다. 클롭은 '낭만 감독'으로 유명하다. 클롭은 여러차례 축구의 정통성과 인간미를 중시했다. 클롭은 2017년 '멀티클럽' 모델을 비판하며 “나는 축구 낭만주의자이고, 축구의 전통을 좋아한다“며 “독일에서 경기 전에 'You'll Never Walk Alone'을 부르는 클럽은 두 개뿐입이다. 바로 마인츠와 도르트문트“라고 말한 바 있다. 리버풀에 취임한 뒤에도 성공시대를 열었던 클롭은 빅클럽들의 거센 구애에도 불구하고, 리버풀과의 의리를 지키며 멋지게 물러났다. 가장 최근에는 북중미월드컵을 앞둔 미국대표팀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감독으로서 끝났다“며 거절했다.
그런 클롭이 축구계의 상업화에 앞장선 레드불 사단과 손을 잡았으니, 당연히 팬들의 반응이 좋을리 없다. 레드불 사단은 독일 분데스리가 라이프치히와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뉴욕 레드불스, 일본의 오이야 아르디자 등의 구단을 소유하고 있다. 그 중 라이프치히는 독일에서 가장 미움을 받는 구단이다. 독일 각 클럽은 소유권의 51% 이상을 반드시 팬이나 회원이 소유하게 돼 있다. 이른바 '50+1' 원칙이다. 이에 따라 티켓 가격 등 클럽의 중요한 의사 결정에 팬들의 목소리가 반영된다.
하지만 라이프치히에겐 이 원칙을 교묘하게 어겼다는 비난이 따라다닌다. 레드불은 2009년 독일 5부리그 클럽이던 SSV마르크란슈테트를 인수하면서 구단명을 'RB 라이프치히'로 변경했다. 도르트문트 등 라이벌들은 레드불이 사실상 라이프치히를 장악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의도적으로 의결권을 가진 회원 수를 17명으로 줄이고, 그 회원들도 레드불과 직간접으로 관련 있는 사람들이란 것이다. 도르트문트의 경우 의결권을 가진 사람만 14만명에 달한다. 여기다 RB가 레드불이 아닌 라젠발의 약자라고 해명하며 여론은 더욱 들끓었다. 독일에서 모기업을 구단명에 넣는다는 것은 정통성을 훼손하는 일로 여겨진다.
독일의 베를리너차이퉁은 9일 '클롭이 레드불로 이적해 자신의 기록들을 파괴하는 이유'라며 신랄한 비판에 나섰다. 베를리너차이퉁은 '그는 아이콘, 아버지 등으로 그간의 감독직에서 묘사됐다. 어디에 있는 모두가 그를 우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제 그의 지위는 위험에 처했다. 그의 레드불 부임 후 SNS의 반응은 더 그렇다. 그가 레드불의 새로운 헤드가 된 다는 것은 마르코 로이스가 샬케04의 감독이 된다는 것만큼이나 놀랍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났고, 이제 팬들은 우울해졌다'라고 전했다.
이어 '노멀원은 영혼 팔이 원이 됐다. 리버풀 부임 당시 그는 자신을 노멀 원이라고 묘사했다. 이러한 접근성은 클롭에게 매우 중요했다. 또한 그는 축구계에 만연한 상업주의를 비판하는 데 지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이러한 모든 것을 창밖으로 내던졌다. 레드불 이적으로 그는 자신의 영혼을 팔았고, 축구가 로맨스가 아닌 팬들과 멀어지는 사업에 지나지 않는다는 확실한 증거를 제공했다'고 비판했다.
빌트의 크리스티안 폴크는 BBC를 통해 “클롭은 지난 5월부터 고민을 했다“며 “논란이 되는 건 사실이다. 지금 독일에선 '그가 영혼을 팔았을까?'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도르트문트 팬들은 라이프치히를 역사 없는 깡통 클럽이라 불렸기에 더욱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영혼을 판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결국 한 달 정도 지나면 가라앉을 거다. 이 나라에서 클롭 전 감독에 대한 사랑은 그가 거의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지난 2월 클롭이 리버풀을 떠나겠다고 했던 발언을 조롱하며 “당시 그는 에너지가 고갈됐다고 느꼈고, 레드불 드링크만 충분히 마시면 더 이상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일단 클롭이 레드불을 선택한 이유는 돈이 가장 명확해 보인다. 독일 '스카이 스포츠'에서 활동하는 플로리안 플레텐베르크 기자는 12일 자신의 SNS를 통해 '클롭은 레드불의 새로운 글로벌 축구 책임자로서 연봉 약 1000만~1200만 유로를 받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이 일을 선택했고, 현재로서는 감독직 복귀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리버풀과 계역 만료 무렵 클롭은 연봉 1500만유로를 받았다. 당시 보다는 적은 금액이지만, 매일 일할 필요가 없는데다 비교적 스트레스를 덜 받는 자리인만큼, 꽤 큰 금액임은 분명하다. 이어 '다만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는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며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는 구체적인 제안이 들어온다면 레드불과의 계약은 종료할 수 있다. 바이아웃 조항은 없지만 종료 옵션은 있다. 상호 존중이 오가면서 모든 관계자가 구두 합의를 마쳤다'고 덧붙였다.
클롭은 독일이 자랑하는 명장이다. 2001년 마인츠를 통해 감독이 된 클롭은 2003~2004시즌 분데스리가 승격을 이끌어내며 주목을 받았고, 이후 도르트문트에 부임해 바이에른 뮌헨의 독주시대를 끝냈다. 2010~2011시즌, 2011~2012시즌 분데스리가 2연패를 차지했고, 2012~2013시즌에는 유럽챔피언스리그 준우승까지 차지했다. 리버풀로 팀을 옮긴 후에는 리버풀이 그토록 염원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안겼다.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도 거머쥐었다.
독일이 자랑하는 명장을 향한 팬들의 여론은 사실상 반반이었다. 독일 스포르트1은 '위르겐 클롭이 레드불에 합류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긴급 설문을 했다. '나는 그에게 더 많은 것을 기대했다! 그의 행보에 실망했다'가 43%, '좋은 결정이다! 그는 감독으로 모든 것을 성취했다'가 41%로 팽팽했다. 실망이 근소하게 앞섰지만, 앞서 독일 언론들의 맹폭에 비교하면, 클롭에 관한 여론이 그렇게까지 나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아무 생각 없다'는 16%였다.
클롭은 최근 토니 크로스의 팟캐스트에 출연, “내가 어떻게 해야 모든 팬들이 만족할 수 있을지 정말로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나는 57세다. 앞으로 몇년간은 더 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감독직을 맡는다는건 상상하기 어렵다“며 “처음부터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레드불로부터 제의가 왔고, 매우 훌륭한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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