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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렬이 약속을 지켰다. 자신의 우승 DNA를 팀에 이식했다.

현대캐피탈이 28일 통영 실내체육관에서 치러진 2024 통영‧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 남자부 결승전에서 대한항공을 3-2(15-25, 25-23, 19-25, 25-19, 15-13)로 꺾고 컵대회 정상에 올랐다. 엄청난 명승부였다. 양 팀 모두 처절할 정도의 투지와 집중력을 발휘하며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승부를 펼쳤다. 최후의 5세트까지도 공이 쉽게 바닥에 떨어지지 않는 긴 랠리들이 속출했다.

그 중심에서 눈에 띄는 선수 한 명이 있었다. 바로 리베로 오은렬이었다. 이번 비시즌에 정든 대한항공을 떠나 현대캐피탈의 유니폼을 입은 오은렬은 이날 선발 리베로는 아니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등록명 레오)와 허수봉을 향한 대한항공의 목적타 서브가 날카롭게 들어가자, 필립 블랑 감독은 오은렬 카드를 빼들었다. 리시브 상황에서 오은렬을 코트 위에 올려 안정감을 불어넣고자 했다.

효과는 탁월했다. 대한항공에서도 리시브를 주로 맡았던 오은렬은 레오와 허수봉의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최대한 넓은 범위를 커버했고, 기민한 발놀림으로 팀의 첫 터치를 도맡았다. 모든 리시브가 완벽했던 것은 아니지만, 리시브 하나로 승패가 결정됐던 1세트와 같은 상황은 나오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경기의 흐름은 조금씩 바뀌었다. 


오은렬이 대한항공 출신이라는 점, 그리고 숱한 큰 경기를 치른 선수라는 점도 큰 힘이 됐다. 대한항공 서버들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는 오은렬은 까다로운 유형의 다양한 서브들을 잘 받아쳤다. 또 결승전과 풀세트 접전이 주는 압박감에도 흔들리지 않고 제몫을 했다. 경험이라는 그의 값진 자산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오은렬의 표정과 눈빛이었다. 친정팀 대한항공에 절대 지고 싶지 않다는 투지가 그의 얼굴에 넘실거렸다. 실제로 오은렬은 이날 받기 힘든 서브나 공격에도 이를 악물고 몸을 던지면서 코트 위에 에너지를 발산했다. 적극적인 손짓과 콜 플레이도 이어졌다.

블랑 감독 역시 오은렬을 칭찬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블랑 감독은 “오은렬을 코트에 투입한 것은 리시브 안정을 이끌 수 있는 선수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옆에 있는 동료들을 잘 도울 수 있을 거라고 믿었고, 오은렬이 역할을 잘 수행해줬다. 앞으로도 동료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누군가가 들어가서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상황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오은렬은 지난 5월 <더스파이크>와 천안에서 만나 진행한 인터뷰에서 “현대캐피탈에서 내가 우승을 차지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많이 해봤다. 그렇게 되면 내가 가는 팀은 늘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는 기분 좋은 징크스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오은렬이 우승 복이 있는 선수구나, 우승 청부사 오은렬이 와서 현대캐피탈이 우승하는구나’라고 인정받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들려줬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뒤, 그는 통영에서 그 포부를 현실로 만들었다. 자신의 몸에 새겨진 우승 DNA를 현대캐피탈에 이식했다. 비록 확고한 주전은 아니었을지라도, 폭발적인 공격들로 득점을 올린 것도 아니었을지라도 그는 제몫을 해내며 약속을 지켰다.

사진_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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