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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과 우리카드 선수들은 아직도 대전에서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품고 있었다.

지난 3월 16일, 대전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경기가 치러졌다. 삼성화재와 우리카드의 2023-24시즌 남자부 6라운드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우리카드가 승리를 거두면 2023-24시즌 정규리그 1위의 주인공은 우리카드였다. 반면 삼성화재는 이미 봄배구 진출이 좌절된 상황이었다. 두 팀의 동기부여도, 당시 시점에서의 전력도 차이가 있는 상황이었기에 우리카드로서는 승리를 바라기에 충분한 경기였다.

그러나 삼성화재는 우리카드에 치명적인 비수를 꽂았다. 절실했던 우리카드를 3-2로 꺾으면서 정규리그 우승의 꿈을 좌절시켰다. 이 결과의 나비효과는 상당했다. 정규리그 1위 자리를 놓치면서 챔피언결정전이 아닌 플레이오프로 향한 우리카드는 준플레이오프를 뚫고 올라온 OK금융그룹(현 OK저축은행)에 업셋을 허용하면서 쓸쓸하게 봄배구 무대를 떠나게 됐다.  


그로부터 7개월이 넘게 시간이 흘렀고, 도드람 2024-2025 V-리그가 개막했다. 우리카드는 삼성화재와의 1라운드 맞대결을 위해 다시 한 번 대전을 찾았고, 3-2(21-25, 25-20, 25-20, 23-25, 15-12) 승리를 거두며 시즌 2승째를 거뒀다. 이 과정에서 이상현의 활약이 특히 좋았다. 블로킹 5개 포함 14점을 잡아냈고, 공격 성공률은 81.82%에 달했다.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실을 찾은 이상현의 이야기는 강렬했다. 그는 “대전에 오면서 마음을 굳게 먹었다. 지난 시즌에 여기서 이기면 우승할 수 있었던 경기를 놓친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드시 되갚아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했고, 힘들었지만 승리를 챙겨서 기쁘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때의 아픈 기억이 아직도 이상현의 마음 한 켠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상현은 지난 시즌의 기억 때문에 삼성화재, 또 같은 포지션의 김준우에게 라이벌 의식을 갖게 됐냐는 질문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라이벌 의식을 느낀다기보다는 지난 시즌의 기억 때문에 미운 거다(웃음). 어떻게든 이기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큰 팀”이라고 솔직한 마음을 표현했다. 김준우에 대해서는 “(김)준우와도 역시 라이벌보다는 서로 장난도 치고 응원도 해주는 그런 사이다. 같이 대표팀에서 활약하면서 친해졌다”는 이야기를 덧붙이기도 했다.

이날 이상현과 한태준의 호흡은 상당히 좋았다. 특히 리시브가 잘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과감하게 B속공 호흡을 맞추는 장면들이 눈에 띄었다. 이상현은 “지난 시즌에 (한)태준이랑 맞췄던 부분들은 감독님이 바뀌었어도 계속 유지를 하려고 했다. 우리가 B속공을 많이 쓰는데, 태준이가 워낙 B속공 패스를 빨리 쏘는 걸 선호하는 스타일이라 초반에는 호흡이 좀 흔들릴 때도 있었다. 그래서 연습 때부터 같이 B속공을 많이 연습하면서 리듬을 조절했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덧붙여 이상현은 “떨어지는 볼에도 속공 패스를 과감하게 미는 선수인 것도 알고 있다. 이번 경기에서는 내가 완벽히 만족할 만큼 떨어진 볼에 대한 속공이 잘 들어가진 않았지만, 어쨌든 처리가 잘 된 부분도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태준이에게 고맙다”는 겸손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끝으로 이상현은 이날 4세트에 받은 그린카드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다. 그는 “그린카드를 받고 싶어서 손을 든 건 아니다. 어차피 상대의 판독 기회가 남아 있었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너무 대놓고 맞은 상황이라서 그냥 손을 들었다. 블로킹 감이 좋은 날이었기 때문에 딜레이되는 시간이 아깝다는 느낌도 있었다. 그냥 빨리 우리의 플레이를 해서 분위기를 끌어올려야 하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고 터치를 인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상현은 “그린카드 제도가 좋은 제도인 건 맞지만, 역시 먼저 손을 들어서 터치를 인정한다는 것이 익숙하지는 않다. 어릴 때는 그렇게 하면 혼을 많이 나기도 했다. 이번에도 아니나 다를까 웜업존에 들어갔더니 욕을 많이 먹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다행히 경기에서 승리했기에 그 장면은 그저 유쾌하게 지나가는 하나의 순간으로 남았다.

비장하고 살벌한 마음가짐으로 코트에 들어섰지만, 팀과 자신을 위해 정직해져야 하는 순간에는 정직해졌다. 그러면서도 엄청난 공격과 블로킹까지 선보였다. 여러모로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을만한 활약을 펼친 이상현의 하루였다.

사진_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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