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뉴스
[24-08-07 07:00:20]
[점프볼=최창환 기자] 한때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도 있었지만 맞는 말이다. 가치를 돈으로 평가받는 프로의 세계에서 보수 1위는 더더욱 상징하는 바가 크다. 이른바 ‘뒷돈’을 받았던 선수를 제외하더라도 KBL 출범 후에는 수많은 선수가 보수 랭킹 1위에 이름을 올리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만큼 보수 1위마다 지닌 사연도 다양했다.
※ 인센티브 도입으로 인한 혼동을 줄이고자 출범 초기 사용됐던 연봉이라는 명칭도 보수로 통일했으며,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8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계약금을 토해내라고?” 출범 초기의 시행착오
농구대잔치의 후광에 힘입어 출범했던 KBL은 출범 초기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보수 역시 마찬가지다. 원년 시즌 보수 랭킹 1위는 전희철, 허재였다. 나란히 1억 2000만 원을 받았다. 당시 샐러리캡이 10억 원이었던 데다 프로야구 보수 1위가 김용수(당시 LG)의 1억 2200만 원이라는 걸 감안하면, 결코 적은 보수가 아니었다.
다만, 프로농구는 입단할 때 별도의 계약금을 받지 않는 리그다. 이는 출범 30년을 향해가고 있는 현재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실타래를 풀기 어려운 문제다. 출범 초기에는 이로 인한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다. KBL은 출범 당시 도입하기로 했던 연수합계법 시행을 2번째 시즌으로 미뤘다. 보수 계약의 걸림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연수합계법이란, 실업에서 프로로 전환한 팀들이 아마 시절 선수에게 지급한 계약금을 근무 연한에 따라 일정 비율로 삭감하는 제도다. 첫 시즌은 5/15, 다음 시즌은 9/15 등으로 차등 공제해야 했다. 연봉 협상에 영향을 끼치는 만큼, 선수들의 반발심은 컸다.
특히 양희승은 고려대 3학년 재학 시절 LG로부터 계약금 4억 5000만 원을 받았는데, 이후 KBL이 출범했다. 양희승은 아직 KBL에서 뛰지도 않았는데 계약금을 차등 공제해야 한다는 제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1997년 LG와의 보수 협상을 거부했다. 1997-1998시즌 개막을 한 달 앞둔 시점서 진행된 LG의 호주 전지훈련에도 참가하지 않았던 양희승은 고려대 선배이자 LG 초대 감독을 맡았던 이충희 감독의 설득에 마음을 돌렸다.
공식적으로 계약금 제도가 없었던 대신 1998-1999시즌까지는 신인들의 보수 상한선도 없었다. 이로 인해 서장훈은 KBL 역사상 최초로 보수 1위에 오른 신인이 됐다. 진로는 신생팀 연고대학 지명에서 연세대를 지명했고, 이후 SK에 인수됐다. SK는 1998-1999시즌 데뷔를 앞뒀던 서장훈에게 KBL 출범 첫 보수 2억 원을 안겼다.
당시 보수 2위 역시 SK 소속 선수였다. SK는 1998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획득, 현주엽을 지명했다. 현주엽 역시 서장훈과 함께 대학무대를 지배한 국가대표였고, 실업농구라면 계약금 10억 원 이상이 보장된 스타였다. 현주엽은 보수 1억 8000만 원에 계약했다. KBL이 1999-2000시즌부터 신인 연봉 상한선(당시 최대 8000만 원) 제도를 도입, 신인 서장훈과 현주엽이 세운 보수 1, 2위는 앞으로도 나올 수 없는 진기록으로 남았다.
‘주성 천하’에 숨겨졌던 맹점
2년 차 시즌에도 2억 2000만 원을 받아 이상민과 공동 1위에 올랐던 서장훈은 2000-2001시즌부터 한동안 단독 1위를 유지했다. SK를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이끌며 3억 원 시대(3억 3000만 원)를 열었고, FA 자격을 취득해 삼성으로 이적한 2002-2003시즌에는 4억 3100만 원을 받았다. 이 역시 KBL 출범 후 최초의 4억 원대 보수였다.
2004-2005시즌까지 5시즌 연속 단독 1위를 지켰던 서장훈의 대항마는 김주성이었다. 2005-2006시즌에 나란히 4억 2000만 원에 계약, 공동 1위에 올랐다. 당시 소속 팀이었던 TG삼보는 “우연이다. 김주성은 협상하는 동안 최고 보수에 대해 운운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라고 말했지만, 미묘한 자존심 싸움은 다음 시즌까지 이어졌다.
김주성이 2006-2007시즌 4억 7000만 원에 계약하며 보수 1위를 예약하자, 서장훈이 계약을 미뤘다. 삼성이 4억 5000만 원을 제시했으나 서장훈은 김주성과 같은 4억 7000만 원을 요구했다. 삼성은 선수 등록 마감일까지 보수 협상을 매듭짓지 못해 보수 조정에 들어갔지만, 재정위원회가 열리기 전 서장훈과 협의해 4억 7000만 원에 재계약했다. 서장훈이 공식적으로 보수 랭킹 1위에 오른 마지막 시즌이었다.
2007-2008시즌부터는 ‘주성 천하’가 열렸다. FA 자격을 취득한 김주성은 이전 시즌보다 2억 1000만 원 인상된 6억 8000만 원에 재계약했다. 이후 2012-2013시즌에 이르기까지 6시즌 연속 보수 랭킹 단독 1위를 지켰다. 공동 1위였던 시즌까지 포함하면 8시즌 연속 1위였다. 이는 서장훈(9시즌 연속)에 이은 2위다.
오랫동안 보수 랭킹 1위를 지켰지만, 당시 제도에는 맹점도 있었다. KBL은 김주성이 첫 FA 자격을 취득하던 시기에 보수 상한선을 신설했다. 샐러리캡의 40% 이상을 줄 수 없다는 규정이었다. 당시 샐러리캡은 17억 원이었고, 이에 따라 김주성은 제도 내에서 최고액인 6억 8000만 원에 사인했다.
이른바 ‘뒷돈’을 근절하고 거품을 빼자는 취지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역시 구단 이기주의에 따른 족쇄였다. 원소속팀 우선 협상기간이 있던 시절, 원소속팀이 샐러리캡의 40%를 제시하면 선수가 이적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삼성과 KCC는 김주성이 FA가 되기만 기다리고 있던 팀이기도 했다. 김주성은 보수 1위를 유지했지만, 신설된 제도로 인해 FA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진 못했다. 보수 상한선은 2012-2013시즌을 끝으로 폐지됐다.
이 맛에 현질하지!
‘주성 천하’를 가로막은 이는 ‘태종대왕’이었다. 2013년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와의 계약이 만료된 문태종은 5억 원에서 36% 인상된 6억 8000만 원에 창원 LG와 계약했다. 우선 협상권을 갖고 있었던 SK가 문태종 대신 박승리를 선택한 게 LG로선 천운이었다. LG는 원소속팀 전자랜드를 비롯해 KT, 오리온스와의 머니게임에서 승리하며 문태종을 손에 넣었다.
당시 FA는 최대금액을 제시한 팀 보수의 90%에 해당하는 보수를 제안한 팀까지 선택할 수 있었지만, LG 외에 6억 1200만 원 이상을 제안한 팀은 없었다. 저연차 선수가 많아 상대적으로 샐러리캡의 여유가 있었지만, 만 37세라는 걸 감안하면 LG로선 과감한 투자였다. 문태종의 뒤를 잇는 보수 2위는 김주성, 양동근의 6억 원이었다.
문태종은 LG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했다. 2013-2014시즌에 LG를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정규리그 MVP까지 선정됐다. 문태종은 귀화혼혈선수 신분으로 보수 랭킹 1위, 정규리그 MVP에 오른 최초의 사례였다. 2014년에 다시 FA 신분이 된 문태종은 비록 2000만 원이 삭감된 6억 6000만 원에 계약했지만, 이 역시 랭킹 1위에 해당하는 보수였다.
문태종의 뒤를 이은 보수 1위는 동생 문태영이 차지했다. 울산 현대모비스의 쓰리핏 주역이었던 문태영은 2015년 FA 협상을 통해 서울 삼성과 8억 3000만 원에 계약했다. 2014-2015시즌 11승 43패 승률 .204에 그쳤던 삼성은 공격력 보강이 절실했다. 평균 득점이 70.2점에 불과했다.
삼성은 이를 단번에 메우기 위해 문태종-태영 형제를 동시에 영입하는 것도 고려했지만, 선수에게 100%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분산 투자는 자칫 2명 모두 놓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이에 따라 삼성은 3살 어려 더 많은 출전시간을 소화할 수 있다는 점, 리바운드 가담 능력도 지녔다는 점 등을 고려해 문태영에게 당시 KBL 최고액을 안겼다.
삼성은 외국선수 드래프트 1순위라는 행운까지 더해 리카르도 라틀리프(현 라건아)를 선발, 정규리그에서 29승 25패 승률 .537를 기록했다. 삼성이 5시즌 만에 거둔 5할 승률이었다. 문태종-태영 형제는 KBL 역사상 최초로 각각 보수 랭킹 1위에 오른 경험이 있는 형제가 됐고, 이들에게 거액을 투자한 LG와 삼성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역시 ‘이맛현’이다.
FA 제도 경종 울린 ‘김종규법’
문태영 이후 양동근, 이정현, 오세근이 차례대로 1위에 올랐던 보수 랭킹은 2019년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진원지는 창원이었다. 당시 LG는 원투펀치로 활약했던 김종규, 김시래가 나란히 FA 자격을 취득했다. 시장 가치가 높은 선수들인 만큼, 둘 다 잡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LG는 공식적으로 “모두 잔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협상에 임하겠다”라고 밝혔지만, 내부에서 우선순위로 꼽은 대상은 김종규였다. 김종규를 붙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으나 김종규의 마음은 이미 떠난 상태였다. 새로운 팀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다. 양측은 협상을 거듭할수록 평행선을 그렸고, 끝내 계약을 맺지 못했다.
그런데 우선협상 마지막 날, KBL은 ‘LG와 김종규의 협상 결과를 보류한다’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김종규가 다른 팀과 사전 접촉했다는 정황을 확인했다. KBL에서 확인해줬으면 한다”라는 게 LG의 입장이었다. 당시 사령탑이었던 현주엽 감독이 김종규와의 통화를 녹취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김종규는 재정위원회를 마친 후 “충분히 소명했다. 잘못한 일이 없기 때문에 변호사를 선임할 필요도 없다.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KBL이 “명확한 증거라 판단 내릴 수 없어 사전 접촉이 아니라고 결론내렸다”라고 유권해석을 내리며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또 하나의 산이 있었다. LG가 구단 제시액으로 12억 원을 제출했던 것.
당시 규정상 김종규를 원하는 구단은 LG의 제시액보다 1원이라도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해야 계약이 가능했다. 이에 KCC가 한 걸음 물러났지만, 골밑 보강이 절실했던 DB는 12억 7900만 원이라는 거액을 베팅했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보수 가운데 유일무이한 10억 원 이상의 계약이었다.
김종규, LG의 마찰은 KBL FA 제도에 경종을 울렸다. 그동안 심심치 않게 떠돌던 사전 접촉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오른 만큼, KBL은 김종규와 DB가 계약을 맺은 후 4개월 만에 FA 규정을 대폭 변경했다. 원소속구단과의 우선 협상을 폐지, 모든 구단과 동시에 협상할 수 있도록 보완했다. 이른바 ‘김종규법’이다. 아직 보상 제도라는 껄끄러운 장치가 남아있지만, 우선 협상기간이 사라진 것만 해도 대단히 의미 있는 변화였다.
#사진_점프볼DB(문복주, 유용우, 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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