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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저축은행이 많은 무기들을 준비했다. 앞에도, 뒤에도, 양 옆에도 무기가 있다.

페퍼저축은행이 29일 통영 실내체육관에서 치러진 2024 통영‧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 여자부 A조 예선에서 현대건설에 2-3(25-22, 23-25, 25-27, 25-22, 11-15)으로 아쉽게 졌다. 그러나 분명 고무적인 부분이 많은 경기였다. 박정아의 27점 활약부터 장위의 압도적인 전위 위력, 한다혜-이예림의 후위 안정감은 남은 컵대회 경기와 다가오는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페퍼저축은행이 분전한 경기 속에서 나온 다양한 장면들 중, 페퍼저축은행이 새롭게 준비한 세 가지의 무기가 활용되는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첫 번째로 보인 무기는 높이의 이점을 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로테이션에서의 반격이었다. 이날 페퍼저축은행의 로테이션은 박사랑-이예림-하혜진-바르바라 자비치(등록명 자비치)-박정아-장위 순으로 고정이었다. 서브 출발이냐 리시브 출발이냐에 따라 세터의 시작 위치가 1번-6번을 오갔을 뿐이었다. 이렇게 구성된 로테이션이 돌아가는 과정에서 유독 반격의 매서움이 돋보이는 자리가 있었다. 바로 박사랑-장위-박정아가 전위에 나란히 서는 때였다.

이 자리에서의 반격이 매서운 이유는 복잡하지 않았다. 우선 전위에 흔히 말하는 블로킹 구멍이 없었다. 197cm의 장위를 중앙에 두고, 수준급 사이드 블로커인 박정아와 세터 중에서는 장신 축에 속하면서 운동능력도 좋은 박사랑이 좌우를 지키면 공격수들이 때릴 공간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이 자리에서 서브를 넣는 자비치가 구속이 제법 나오는 서브를 구사하면서 리시브 라인을 공략했다. 


빠르고 강한 서브를 넣은 뒤 견고한 블로킹으로 득점을 만들거나 유효 블로킹을 만들어서 수비 퀄리티 및 반격 확률을 높이는 ‘서브 앤 블록’은 가장 심플하면서도 현대 배구에서 그 존재감을 확고히 하는 전략이다. 요컨대 박사랑-장위-박정아의 전위에 자비치가 서브를 넣는 자리에서 페퍼저축은행은 ‘서브 앤 블록’을 잘 해냈다.

자비치의 서브 횟수가 22회로 팀 내 최다인 것이 이를 증명한다. 서브를 많이 넣었다는 것은 곧 자신의 서브 차례에 반격을 많이 만들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전위 세 선수의 블로킹 개수(11개 - 장위 6개, 박정아 2개, 박사랑 3개)와 유효 블로킹 개수(21개 - 장위 10개, 박정아 6개, 박사랑 5개) 역시 또 다른 증거다.

페퍼저축은행의 두 번째 무기는 후위에 있었다. 장소연 감독은 이날 박정아가 서브를 넣는 1번 자리에 들어설 차례에 채선아를 자주 투입했다. 박정아의 자리에 채선아가 들어가게 되면 페퍼저축은행의 리시브 라인은 후위의 한다혜-채선아와 4번 자리의 이예림이었다.

이 라인업은 현재 페퍼저축은행의 선수 구성에서 구축할 수 있는 가장 안정성이 뛰어난 라인업이다. 리시브 상황에서는 깔끔한 리시브로 패턴 플레이의 질을 높일 수 있고, 수비 상황에서는 디그 후의 반격 기회를 잡기 용이하다. 지난 시즌보다 폼이 올라온 채선아에 새롭게 팀에 합류한 한다혜와 이예림이 엄청난 힘을 보태면서 지난 시즌에는 만들 수 없었던 단단한 방패 라인업이 가동됐다(리시브 효율 - 이예림 33.33%, 한다혜 40.91%, 채선아 66,67% / 디그 성공 도합 55회). 다가올 정규리그에서도 든든한 방패가 필요할 때 장 감독은 언제든 채선아 카드를 꺼내서 이 라인업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무기는 양 옆에 있었다. 이날 박사랑이 1번에 설 때 왼쪽 전위인 4번 자리에는 자비치가, 오른쪽 전위인 2번 자리에는 이예림이 섰다. 일반적으로 아웃사이드 히터들은 왼쪽 공격을, 아포짓은 오른쪽 공격을 도맡는 경우가 많기에 두 날개 공격수가 선호하는 자리와 반대인 자리에 서게 되는 로테이션에서는 동선 이동을 통해 좌우를 바꿔주는 경우도 많다. 다만 이 경우 동선이 꼬이면서 범실이 나오거나 미묘하게 공격의 템포가 늘어지는 약점이 노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날의 페퍼저축은행은 좌우 변경에 집착하지 않았다. 이예림은 오른쪽에서, 자비치는 왼쪽에서 자연스럽게 공격을 구사했다. 성공률이 크게 떨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1세트 19-19에서 나온 자비치의 왼쪽 공격과 3세트 9-12에서 나온 이예림의 오른쪽 공격은 상당히 매서웠다. 공격 상황에서 좌우를 크게 타지 않는 이예림과 자비치의 다재다능함이 팀에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무기가 된 셈이다.


이처럼 페퍼저축은행은 전후좌우에 각종 무기들을 갈고 닦아 활용했다. 비록 경기 결과는 아쉬운 패배였지만, 앞으로도 계속 지금의 무기를 다듬고 또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온다면 더 이상 페퍼저축은행을 무난한 1승 제물이나 연패가 일상인 팀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진_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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