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뉴스
[24-09-15 18:37:51]
수비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습니다. 그러나 조던이 더 잘했을 뿐입니다. 그게 조던이 최고인 이유입니다. -덕 콜린스-
첫 번째 파이널에서 역사상 최고의 포인트가드 매직 존슨(65‧206cm‧LA 레이커스), 두 번째 파이널에서는 본인과 최고 슈팅가드를 다투던 클라이드 드렉슬러(62‧201cm‧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를 꺾고 리핏을 달성했던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61‧198cm)은 1992~93시즌 대업에 도전한다. 쓰리핏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만만치않았다. 파이널에서 조던의 3연패를 막아내겠다고 나선 상대는 서부 컨퍼런스 1위 피닉스 선즈. 무엇보다 피닉스가 무서웠던 것은 정규시즌 MVP 찰스 바클리(61‧198cm)의 존재였다. 리핏 당시 조던은 ‘농구황제’로 불리며 리그에서 라이벌이 없다는 극찬을 받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구태여 라이벌을 꼽으라면 찰스 바클리 밖에 없다’는 평가가 설득력을 얻고있는 분위기였다.
그만큼 당시 바클리는 아주 강력했다. 파워포워드로서 사이즈는 작은편이지만 신장대비 윙스팬(221cm)이 굉장히 길고 무엇보다 묵직한 체중이 무색할만큼 운동신경이 좋아 같은 4번은 물론 각팀 주전급 센터를 상대로도 포스트 싸움에서 전혀 밀리지않았다. 언더사이즈 빅맨에도 불구하고 장신숲을 과감하게 헤집고 다녔다.
고독한 에이스 바클리와 피닉스의 만남
1984~85시즌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서 데뷔해 16시즌간 평균 22.1득점, 11.7리바운드, 3.9어시스트를 기록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강력한 빅맨이면서도 다재다능했다. 특히 리바운드같은 경우 데뷔 시즌을 제외한 나머지 15시즌 동안 단 한 시즌도 평균 두 자릿수 기록을 놓치지않았다. 1986~87 시즌에는 리바운드왕까지 차지했다.
신장만 작았을뿐 얼마나 골밑에서 전투적으로 싸워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창 때의 바클리는 단단하고 힘센 작은 거인이면서도 다양한 스킬이 돋보이는 테크니션이었다. 빼어난 운동능력에 더해 볼 핸들링도 포지션 대비 매우 좋은 편이었던지라 큰 덩치로 코트를 가르고 달려나가 덩크슛으로 마무리하는 코스트 투 코스트 무브는 화려하면서도 강렬했다.
바클리는 데뷔 당시부터 필라델피아의 현재와 미래로 불렸다. '닥터 J' 줄리어스 어빙, 1980년대 최고 센터중 한명이었던 모제스 말론 등 쟁쟁한 선배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이들의 뒤를 이어 필라델피아의 전성기를 이끌 것으로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쟁쟁한 선배들의 은퇴 이후 홀로 고군분투하는 경우가 늘어갔고 팀의 전력보강에 의지에도 불만을 터트리며 잦은 마찰을 일으켰다.
기량이 정점에 올라있던 상황에서 플레이오프 때마다 고배를 마시는 현실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결국 프랜차이즈 스타로서까지의 동행은 힘들겠다고 판단한 필라델피아는 제프 호나섹, 팀 페리, 앤드루 랭을 받고 바클리를 피닉스로 트레이드하기에 이른다.
바클리 입장에서는 이때가 최고의 기회였다. 필라델피아 시절과 달리 피닉스에는 바클리를 도와줄 동료들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케빈 존슨은 단신임에도 슬램덩크가 가능할 정도로 폭발적인 운동능력을 자랑하던 공격형 포인트가드였는데 실제로 바클리 이적 이후 원투펀치로 함께 활약했다.
거기에 외곽에는 바클리, 존슨에 대한 집중수비를 분산시켜줄 수 있는 댄 멀리라는 확실한 슈터가 버티고 있었다. 톰 체임버스, 세드릭 세발로스, 리차드 듀마스, 데니 에인지 등 수준급 롤플레이어들의 존재도 든든하기만 했다. 뛰어난 선수들이 각 포지션에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피닉스는 1992~93시즌 서부컨퍼런스 1위를 차지했고 새로운 간판스타 바클리는 MVP에 오르며 최고의 시즌을 보낸다.
위기에 강했던 바클리+불사조 군단
피닉스 선즈는 정규시즌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렸지만 파이널 우승 여부에 대해서는 박한 평가를 받았다. 경쟁팀들에 비해 인사이드 전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1라운드에서 블라디 디박을 앞세운 레이커스에게 홈경기 1, 2차전을 모두 내주게 된다. 어두운 그림자가 피닉스에 드리웠지만 불사조 군단은 포기하지 않았다.
3차전부터 무명의 올리버 밀러를 바클리의 인사이드 파트너로 적극 기용한 승부수가 반전을 일으켰다. 스트레치 빅맨 타입의 디박을 밀러가 거친 수비로 밀어붙이며 활약을 제한시켰고 이는 레이커스 특유의 조직적인 팀 플레이를 흔들었다. 반대로 바클리는 내외곽을 넘나들며 펄펄 날았고 존슨의 돌파, 멀리와 에인지의 외곽슛까지 터지며 3연승으로 시리즈를 뒤집어냈다. 특히 마지막 5차전은 연장혈투 속에서 거둔 승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컨퍼런스 파이널 또한 쉽지않았다. 피닉스의 앞을 가로막고 선팀은 숀 켐프와 게리 페이튼의 시애틀 슈퍼소닉스였다. 시애틀은 여러 가지 부분에서 피닉스와 흡사했다. 특급 1번 페이튼과 활동량 넘치는 4번 켐프가 팀의 중심이었으며 백인 슈터 데들리프 슈렘프가 외곽을 책임지고 있었다.
양팀은 7차전까지 팽팽한 승부를 펼쳤는데 승부를 끝낸 것은 바클리였다. 바클리는 팔꿈치 통증에도 불구하고 44득점, 24리바운드를 기록하는 괴력으로 피닉스를 파이널에 진출시켰다. 왜 바클리를 역대 최고의 파워포워드 중 한명이자 당시 조던의 유일한 라이벌이라고 불렀는지 납득할 수 있는 시리즈였다.
용호상박의 대결, 승부를 결정지은 3점슛 한방
시카고 불스와 경기를 치르는 모든 팀이 그렇듯 피닉스 또한 1차 목표는 ‘조던 봉쇄’였다. 조던의 폭발적인 득점력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뜨겁게 날뛰는 황소 군단을 잡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시 조던의 전담 수비를 맡은 멀리는 올-디펜시브 세컨드 팀에 선정된 뛰어난 수비수였다.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활약을 제어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파이널의 조던은 상대가 누구든 득점력에서 별다른 기복을 보이지 않았다. 수비를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조던에게는 통하지않았고 매경기 30득점 이상을 허용했다. 파이널이 6차전까지 진행된 가운데 1차전 31득점, 2차전 42득점, 3차전 43득점, 4차전 55득점, 6차전 33득점을 기록했다. 파이널 평균 41득점은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역대 최고 기록이다.
멀리는 사이즈, 파워에서는 조던에게 밀리지 않았지만 스피드에서의 차이가 컸다. 이 당시의 조던은 운동능력과 스피드가 절정에 달해있던 시절이었다. 공격력 자체도 엄청났지만 멀리의 스타일 자체도 조던을 막기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물론 피닉스도 전혀 변화를 주지않은 것은 아니었다.
사이즈는 작지만 스피드에서 그 이상인 존슨을 수비수로 붙여보기도 했지만 조던은 자신보다 한참 작은 그를 포스트업으로 탈탈 털어버렸다. 멀리는 스피드에서, 존슨은 파워와 사이즈에서 밀렸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다른 선수들도 비슷했다. 멀리의 사이즈를 갖추고 조던의 활동량을 따라갈 수 있는 선수가 없었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바클리도 만만치않았다. 부상을 안고 시리즈를 끌고온 탓에 몸이 만신창이가 됐고 스카티 피펜, 호레이스 그랜트라는 빼어난 수비수들의 집중수비에도 불구하고 득점과 리바운드에서 리더 역할을 했고 패싱게임에서도 한몫 거들었다. 개인의 퍼포먼스 자체는 조던 못지않았다. 하지만 팀 파워에서 시카고에게 밀렸고 무엇보다 승부처에서의 작은 차이가 결과를 가르며 일생일대의 기회에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승패를 가른 것은 6차전이었다. 당시 피닉스는 4쿼터 막판 질식수비를 통해 게임을 역전해냈고 남은 시간은 14초였다. 이때만 잘 버티어냈으면 기세를 모아서 7차전까지 이기지 말란 법도 없었다. 게임을 끝낸 것은 조던도 피펜도 아닌 단신 백인가드 존 팩슨이었다. 피닉스 수비가 조던, 피펜, 그랜트 등에게 집중된 가운데 공은 돌고돌아 3점라인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팩슨에게 갔다.
오픈찬스가 난 팩슨은 주저하지않고 슛을 던졌고 역전 3점슛으로 이어졌다. 피닉스와 바클리의 꿈이 산산조각으로 무너져버린 순간이었다. 반대로 조던과 시카고는 쓰리핏을 달성하며 농구황제와 신흥왕조의 위상을 더욱 튼튼히 했다. 아쉽게도 바클리는 이후에도 우승을 달성하지못하고 무관의 제왕에 그치고 만다. 우승에 대한 열정은 가득했지만 크고 작은 부상이 잦아지며 전성기가 일찍 꺾이고만 이유가 컸다. 의미없는 가정이겠지만 만약 바클리가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NBA역사는 많은 부분에서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나이키, 점프볼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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