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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사직구장 2루에는 '사이클링히트'의 샘물이 흐르는 걸까. 롯데 자이언츠 고승민이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리그 역사상 사이클링히트(한 경기 단타, 2루타, 3루타, 홈런을 모두 치는 것)는 총 32번, 그중 4번이 롯데에서 나왔다. 1987년 정구선, 1996년 김응국, 2020년 오윤석, 그리고 올해의 고승민이 그 주인공이다.

4번의 사이클링 히트 중 3번이 2루수(정구선 오윤석 고승민)라는 점이 눈에 띈다. 의외로 역대 사이클링히트를 칠 당시 2루수로 뛰던 선수의 비율이 높다. 8번으로 전체의 25%를 차지한다. 롯데 선수들 외에 2004년 신종길(당시 두산), 2014년 오재원, 2017년 서건창(당시 넥센), 2020년 김혜성(키움), 2023년 강승호(두산)까지다.

정작 롯데 2루수 레전드이자 KBO리그 전체를 통틀어 손꼽히는 역대급 선수인 박정태는 사이클링 히트를 치지 못했다. 2001년 5월 5타수 5안타를 치며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할 뻔한 기회가 있었지만, 2루에서 멈칫하는 바람에 3루에서 아웃돼 대기록을 놓쳤다.

고승민은 17일 부산에서 열린 LG 트윈스전에서 홈런 포함 5타수 5안타 4득점 3타점의 원맨쇼를 펼치며 7대3 승리를 이끌었다. 1회 중전안타를 시작으로 3회 우중간 1타점 3루타, 5회 좌전안타, 7회 역전 결승포(시즌 12호), 8회 우중간 1타점 2루타를 잇따라 몰아쳤다.

이날 롯데는 1회초 LG에 3실점하며 리드를 내줬지만, 3회 2점, 5회 1점을 따내며 따라붙은 뒤 7~8회 4점을 추가하며 역전승을 거뒀다.

북일고 출신 고승민은 1m89 장신에 탄탄한 체격을 자랑하는 2루수다. 데뷔초 2루수였지만, 군복무를 마친 직후 타격을 살리기 위해 우익수로 전향했다. 우익수 자리에서 타율 3할1푼6리, 특히 후반기에만 4할이 넘는 타격을 과시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뽐냈다.

지난해에는 1루로 다시 포지션을 옮겼다. 우익수(141⅔이닝) 좌익수(14이닝)보다 1루수(449⅔이닝)로 훨씬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거듭된 포지션 이동으로 인한 수비 부담이 컸는지, 타율 2할2푼4리 OPS(출루율+장타율) 0.649로 예상치 못한 커리어로우 시즌을 보냈다.

올해는 김광수 코치의 추천으로 다시 2루로 이동했다. 안치홍이 빠진 자리를 고민하던 김태형 감독에게 산전수전 다 겪은 김광수 벤치코치가 넌지시 '고승민을 한번 써보시라'하고 추천한 것. 김광수 코치는 현역 시절 '날다람쥐'라는 찬사를 받으며 한 시즌 50도루(1991년)를 성공시켰던 2루수였고, 김인식-김경문-김성근 등 명장들의 곁에서 보좌하며 수많은 선수들을 성장시킨 백전노장이다.

반신반의하면서도 고승민을 2루수로 다시 돌린 결과는 '초대박'이었다.

올해 고승민은 타율 3할8리 12홈런 79타점, OPS 0.827로 팀의 핵심 타자로 우뚝 섰다. 본인에게 가장 익숙한 자리에 세운 선택이 빛을 발하고 있다. 장신이라 우려됐던 수비 우려도 깨끗이 씻어냈다.

말그대로 만능 해결사로 우뚝 섰다.

올시즌 종료 후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프리미어12 대표팀에 선발될지도 관심거리다.

유망 선수 보는 안목이 탁월한 류중일 감독은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주변의 반대를 물리치고 롯데 윤동희를 마지막 카드로 교체 선발, 금메달 획득에 혁혁한 공을 세우도록 한 바 있다.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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