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뉴스
[24-08-11 16:15:45]
"말로 형용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OK금융그룹 리베로 부용찬의 말이다.
부용찬은 V-리그 정상급 디그 능력을 갖춘 리베로. 한양대 시절부터 동물적인 순발력으로 일찍이 이름을 알렸다. 2011년 프로 도전장을 내민 그에게 모이는 관심은 지명 순서로 드러났다. 전체 3순위로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부름을 받은 것. 이로써 2010년 정성민(대한항공) 이후 역대 2번째 남자부 1라운더 리베로가 된 부용찬은 데뷔하자마자 팀의 주전을 꿰차며 맹활약했다. 2011-12시즌 34경기 133세트에 나서 디그 2위(세트당 2.872개), 수비 5위(세트당 5.910개), 리시브 8위(효율 58.213%)를 남겼다. 이후 2016년 삼성화재로 둥지를 옮긴 그는 2016~18시즌 두 시즌 연속 V-리그 베스트7 리베로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고, 2018-19시즌을 앞두고 OK저축은행(현 OK금융그룹)으로 이적하며 현 소속팀과 인연을 시작했다.
어느덧 OK금융그룹에서만 7년 차. 최근 부용찬은 연봉 총액 2억7천만원에 원 소속팀과 재계약했다. 올해로 한국 나이 36세. 어쩌면 은퇴 전 마지막 FA가 될 수도 있기에 신중, 또 신중했다는 게 그의 말. "지난 시즌이 끝나고 FA가 되면서 은퇴할 팀을 고른다는 마음으로 신중히 고민했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 보니 앞으로 선수 생활을 얼마나 더 하게 될진 모르지 않나. 그래서 계약 조건에 대해 얘기 나눌 때도 구단에 이런 생각들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그런 그가 OK금융그룹과 재동행을 택한 이유는 하나. 팀에 대한 애정이다. 부용찬은 "이 팀에 확실히 작년부터 애정이 많이 생겼다. 이전에는 사실 대부분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팀에 대한 마음이 그렇게 크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 오래 있으면서 점점 애정이 쌓였고, 무엇보다 작년에 오기노 감독님이 오시면서 팀이 정말 긍정적으로 많이 변하고 있고, 거기에서 배우는 게 굉장히 많다고 느꼈다. 그런 점이 재계약을 하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2014~16시즌 챔프전 2연패 이후 OK금융그룹은 한동안 중하위권으로 추락했다. 2022-23시즌에도 정규리그 5위에 그쳤다. 그러다 지난해 오기노 마사지 감독이 팀에 새로 부임하자마자 창단 첫 KOVO컵 우승을 차지하더니 2023-24시즌 챔프전 준우승까지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결과 못지않게 내용도 색달랐다. 오기노 감독은 외국인 선수 중심의 '몰빵 배구'에서 벗어나 모두가 공격과 수비에 함께 가담하는 시스템 배구를 외쳤다. 프로 14년 차 베테랑 부용찬에게도 낯선 경험이었다.
부용찬은 "그간 한국 배구는 외국인 용병 의존도가 굉장히 높았다. 그런데 오기노 감독님은 그에 반하는 전술과 철학을 강조하시니 처음에는 의아했다. 왜냐하면 국제대회는 몰라도, V-리그에서만큼은 용병에 볼을 몰아주는 게 어느 정도 검증된 승리 공식이었지 않나. 그런데 오기노 감독님과 함께하면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걸 배웠고, 지금도 2년째 배우고 있지만 계속 느끼고 있다. 누구 한 명 때문에 게임을 이기고 지는 게 아니라 다 같이 해서 이기든 지든 뭔갈 해내자는 철학.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진정한 원팀이 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이어 "부임 2년 차가 되면서 오기노 감독님의 지도 스타일에도 변화가 생겼다. 우선 선수들의 레벨업을 원하시고 있다. 더 다양한 걸 요구한다기보단 작년에 이룬 걸 토대로 더 섬세하고 디테일한 부분을 강조하신다. 또 작년에는 선수들이 지시 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였다면, 올해는 굉장히 강하게 말씀하시는 편이다. 선수들 모두 지난 시즌에 이어 또 한 번의 긍정적인 시행 착오를 겪는 중이다. 이번 시즌이 시작되면 분명 지난 시즌과는 또 다른 팀이 돼 있을 것 같은 기대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시즌 챔프전 준우승 후 부용찬은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분명 기뻤지만, 그와 동시에 밀려오는 '이번에도 넘지 못했다'는 허무감이 마음 한켠에 자리잡았다. 생애 첫 우승 기회를 눈앞에서 놓친 까닭이다. 그는 "아쉽다는 말로 다 표현하긴 어렵다. UFC 정찬성 선수가 '나는 챔피언이 될 수 없다는 걸 느꼈다'고 얘기한 게 전에 되게 이슈가 많이 됐지 않나. 그거랑 비슷한 감정이었을 것 같다. 긴 선수 생활 동안 끊임없이 노력하며 이 자리를 위해, 우승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오다 코앞에서 놓친 그 감정은 말로 형용이 잘 안 된다. 모든 걸 쏟아냈다고 자부했기 때문에 '이게 내 한계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렇지만 지난 시즌에도 처음부터 챔프전을 생각하고 시즌을 준비한 건 아니다. KOVO컵부터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다 보니 어느새 그 단계에 도달했다. 올해도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매 경기 혼신을 쏟아내다 보면 다시 우승에 도전할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다. 아쉬워할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연습하는 게 맞는 자세인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부용찬은 2023-24시즌 도중 이민규(OK금융그룹)의 부상으로 임시 주장직을 맡았다. "팀을 하나로 뭉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내부 칭찬이 잇따를 정도로 그의 리더쉽은 뛰어났다. 능력을 인정받아 2024-25시즌을 앞두고 정식 주장으로 선임된 부용찬. 주장 완장의 무게만큼 책임감도 늘었다. 그는 "개인 기술력이나 기록도 중요하지만, 어떻게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팀에 도움을 주자는 생각이었다. 코트 안팎에서 주도적으로 분위기를 띄우려고 한 모습도 비슷한 이유다. 그런 부분들이 쌓여서 지난 시즌 스스로도 좋은 결과를 얻었다. 계속 팀원들을 격려하고 북돋아주는 게 앞으로도 팀의 선참으로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인 것 같다"고 얘기했다.
아울러 부용찬은 "나이가 어느 정도 있다 보니 똑같은 훈련을 하더라도 예전에 비해 힘들다. 웨이트 트레이닝 같은 걸 할 때도 사실은 많이 힘든데, 그런 만큼 젊은 선수들과 더 경쟁심을 갖고 하려는 편이다. '쟤보다는 더 들어야지', '쟤보다 하나 더 해야지' 이렇게 속으로 외친다. 프로라는 곳이 그래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무대 아닌가"라고 웃으며 베테랑으로서 마음가짐도 함께 설명했다.
끝으로 부용찬은 앞으로 남은 선수 생활에 대한 각오와 함께 말을 마쳤다. "당연히 우승을 하고 은퇴하는 게 가장 큰 목표지만, 요즘 들어 그 못지않게 많이 고민하는 게 있다. 나이가 들고 은퇴할 시기가 다가오다 보니까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남고 싶은지를 스스로 계속 묻게 된다. 잘하고 못하고 이런 걸 떠나서 내 플레이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저 선수는 정말 응원하고 싶게 만든다' 이런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 매 경기 간절하다고 느껴질 만큼 최선을 다하는 선수로 남고 싶다."
사진_용인/송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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