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뉴스
[24-08-12 11:52:52]
[점프볼=배승열 기자] 한국농구의 뿌리가 되는 중·고교 아마농구를 찾아가는 코너다. 2024년 여섯 번째로 찾은 학교는 여자농구 명문 팀 중 하나인 선일여고다. 지난해 숙명여고에 이어 두 번째 여고 방문이다. 한동안 침체기에 빠졌던 선일여고는 최근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한국 여자농구 명문 고교팀으로 수많은 프로선수를 배출한 선일여고를 찾았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8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 명문 ‘선일농구’ 부활의 힘
한국 여자농구에 관심이 있는 농구팬이라면 선일여고 농구부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아니 모를 수가 없는 명문 팀이다. 한국 여자농구의 전설 전주원 코치(現 우리은행)의 모교로 허윤자(現 하나원큐) 코치도 선일 농구인이다. 여기에 WKBL(한국여자농구연맹) 인기스타 이경은과 신지현도 ‘선일농구’ 성골이다. 이들은 모두 선일초·중·고 농구부 출신이다.
이렇게 꾸준히 한국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을 배출한 선일여고 농구부는 1972년 창단했다. 1979년 제16회 쌍용기 준우승을 시작으로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밥 먹듯이 했다. 1980년에는 3관왕, 1985년에는 4관왕, 1990년에는 5관왕 등 대회만 나갔다 하면 우승컵과 함께 돌아왔다. 2013년 제21회 연맹회장기에서 신지현은 결승에서 40점을 쏟아부으며 팀 우승을 이끌며 MVP에 선정됐다. 하지만 선일여고의 우승은 신지현 이후 맥이 끊겼다. 선수 수급 문제는 물론이고 선일농구의 뿌리, 선일초 농구부도 2016년 해체 후 2018년 재창단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10년 가까이 선일 농구부를 맡은 이종우 부장은 아직도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선일초 농구부가 해체된 시기였다. 고등학교 선수들도 5~6명으로 운영되면서 위기가 계속됐다. 초등학교 팀이 없으면 여자농구가 발전할 수 없겠다고 느꼈고, 어렵게 선일초 농구부를 재창단하면서 지금의 선일농구 시스템을 재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많은 여고팀은 선수 수급 문제에 직면했다. 선일여고 또한 연계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지만 선수 수급은 항상 중요한 문제였다. 이종우 부장은 “농구부 입장에서는 선수들이 연계 학교로 진학하기를 바란다. 선일초에서 농구를 시작해 선일여중, 선일여고로 이어지는 것이 이상적인 꿈이라 생각하는데,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며 “다시 연계 시스템이 갖춰지고 좋은 선수가 모였다. 여기에 오충렬 코치님이 오면서 명가 재건과 선일농구 부흥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선수, 코치 여기에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학교의 관심. 지방팀과 달리 서울팀은 상대적으로 교육청과 체육회의 지원을 받기가 어렵다. 많은 종목과 팀이 있기에 어느 한 팀에 예산을 편성하기 어려운 것. 하지만 선일농구는 학교장의 관심과 지원으로 어느정도 예산 문제의 걱정을 덜고 있다.
오충렬 코치는 “이사장님과 초·중·고 교장선생님이 학생들뿐 아니라 농구부에 관심이 많다. 운동부에도 부족하지 않게 예산을 편성해서 큰 부담이 없다. 이렇게 학교의 관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선일여고 분위기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고 전했다. 침체와 위기를 겪는 와중에 선일여고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데는 학교의 노력은 물론이고 졸업생들의 힘도 있었다. 허윤자 코치는 모교 후배들을 위해 슈팅 기계를 후원했다. 지난해 신지현은 초·중·고 선수들에게 1000만 원 상당의 물품을 후원했고, 앞서 이경은도 후배들을 찾아 격려했다. 모두의 관심과 노력으로 선일농구는 더욱 명문학교로서 입지를 새겼다.
초·중·고가 함께 운동하는 전국에서 가장 큰 체육관
선일여고는 2013년 우승 이후 2022년 종별대회에서 처음 우승했다. 오충렬 코치가 선일여고에 부임한 지 5개월 만에 이룬 결과물이다. 이종우 부장은 ‘선일의 귀인’이라고 추켜세웠다. 오충렬 코치는 무려 27년의 아마농구 지도자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 1996년 목포 유달중학교에서 지도자로 시작했고 2000년 대 초반에는 법성고에서 8년 넘게 여고 코치로 지냈다. 이후에도 남중·남고 지도자로 커리어를 이어갔고 2022년부터 지금까지 선일여고를 이끌고 있다.
오충렬 코치는 “선일여고에 오기 전에는 호계중학교에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전남제일고, 목포상고에서도 코치 생활을 했다. 첫 제자는 백인선이 있고 홍성헌(現 성균관대 코치), 우승연(現 광주고 코치) 등이 제자다. 전주고, 제물포고(A코치) 등 남중·남고·여고까지 코치를 경험했기에 선일여고까지 올 수 있었다. 법성고에서 8년 넘는 시간이 경험이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선일여고의 색깔은 강한 압박, 3점슛이다. 이는 오충렬 코치가 추구하는 농구다. 그는 “선수들에게 운동 자세를 항상 강조하고 말한다. 스스로 꿈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며 “요즘 많은 선수가 스킬 트레이닝을 받는다. 나쁜 버릇은 못하게 막지만, 배우고 연습한 것을 실전에서도 마음껏 해보라고 이야기한다. 또 현대 농구에서 슛이 없으면 선수로 살아남기 어렵다. 공격에서 다른 것은 말하지 않지만, 슛만큼은 찬스에서 언제든 던지라고 말한다”고 이야기했다.
이종우 부장의 노력으로 다시 선일초·중·고 연계 시스템이 부활했다. 여기에 오충렬 코치의 지도력이 더해지면서 선일여고는 2022년 종별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상승 곡선을 그렸다. 그렇게 2024년 첫 대회였던 춘계 연맹전에서 우승, 이어진 협회장기에서는 준우승했다. 후반기 첫 대회 주말리그에서는 인성여고와 숙명여고를 꺾고 조 1위로 왕중왕전에 진출했다.
여기에 선일농구의 자랑 체육관도 있다. 코트 3면이 나오는 큰 체육관 안에서 선일초, 선일여중, 선일여고가 함께 훈련한다. 심지어 농구전용 체육관이다. 선수들이 원하면 24시간 언제든 개방한다. 이곳에서 초등학교 동생들은 중학교, 고등학교 언니들을 보며 꿈을 키운다. 맏언니 고등학생들은 초등학교·중학교 동생들을 챙긴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선일자매들의 우애는 체육관 밖 대회장에서도 이어진다.
오충렬 코치는 “초·중·고 연계 시스템이 있지만, 조금 망가진 모습이었다. 선수들도 기량이 있지만 패배 의식이 있었다. 자유롭게 운동하고 훈련하면서 기초, 기본을 끌어올렸다. 점차 분위기가 좋아졌다”며 “함께 운동하며 언니, 동생 관계가 형성되면서 대회에 나가면 서로 응원하기 위해 체육관을 찾아 응원한다. 선일만의 문화가 있는데, 하프타임 1분을 남기고 관중석에서 교가를 제창한다. 교가가 끝나면서 후반이 시작되는데, 이렇게 서로 응원하기 위해 교가를 부르는 문화가 꽤 됐다”고 전했다. 이종우 부장 또한 “초·중·고가 함께 운동하는 행복한 분위기다. 여기에 언니들의 성적이 나오면서 연계 학교 시스템이 더 끈끈해졌다. 올해도 우승으로 시작해 분위기가 좋다. 꿈을 향해 정말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 모였다”고 했다.
그렇게 현재 선일여고는 인천, 용인, 광주, 하남에서 선수들이 찾아와 등하교 하며 운동한다. 물론 선일초부터 중·고까지 거친 이들도 있다. 이종우 부장은 “선일초·중·고를 졸업하면 선일농구 기념 금반지를 준다(웃음). 현재 3학년에서 (홍)현서가 그렇고 1학년 (조)희원이와 (이)수현이도 선일초·중·고에서 운동한다”며 “선수 휴게실은 있지만, 숙소가 없어 통학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운동이, 농구가 좋아서 장거리 통학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넓고 쾌적한 체육관에서 선후배가 자매처럼 지내며 자율적인 운동 분위기 속에 선수들은 확실한 꿈과 목표를 위해 땀 흘리고 있다. 하지만 여자농구의 냉혹한 현실을 선일여고도 피할 수만은 없다.
차가운 여자농구의 현실
오충렬 코치는 “동계 훈련 후 3명이 운동을 그만뒀다. 요즘 딸 하나 있는 집에서 힘든 운동을 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클럽 농구는 선호하지만, 엘리트 농구는 다르다”고 전했다. 오랜 기간 여자 아마농구를 지켜본 이종우 부장 또한 가까이서 보고 느낀 현실을 이야기했다.
그는 “농구에 올인한 엘리트 선수들이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운동에만 시간을 쏟을 수 없는 환경이다. 부족한 운동 시간을 선수들이 새벽(등교 전)과 야간을 이용하는데 그걸로도 부족할 것이다. 무엇보다 농구가 좋고 쏟아부은 선수들에게 미래가 ‘바늘구멍’이다. 모든 엘리트 선수의 꿈은 프로선수지만, 모두가 프로선수가 되는 것이 아니다. 또 프로에 가더라도 롱런하며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대학교도 있지만, 이들이 할 수 있는 미래가 극히 제한적이다. 감독 교사로서 선수들이 꿈을 향해 달리고 인상 쓰지 않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좋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깝다”고 이야기했다.
저변, 인프라 확대를 위한 진지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근 프로 팀들과 처음 합동 훈련을 했는데 이런 기회 또한 어린 선수들에게 확실한 동기 부여가 된다. 위에서 부족한 것이 보이면 대학교, 고등학교에 투자, 지원하고 전수하면 다시 프로 팀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어린 선수들을 위해 어른들이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 선일농구는 농구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여자농구의 미래를 선도할 것으로 기대된다.
오충렬 코치는 “농구를 하다 보면 이기는 날도 있고 지는 날도 있다. 선수들에게 항상 말하기를 책임은 내가 지니깐 코트 안에서 원 없이 하라고 말한다. 물론 운동량이 줄어든 만큼 선수들이 욕심을 내다가 다치는 모습을 많이 봤다. 부상 위험을 피하고 관리하는 것도 내 몫이다. 그래서 트레이너도 학교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의 요청을 받아들인 선일여고는 체육대학교와 연계하며 트레이너 실습생을 모집했다. 선일여고 트레이너는 팀 연습은 물론이고 대회에도 동행하며 선수들의 몸 상태를 체크하고 부상 관리 예방을 위한 컨디셔닝을 실시한다. 명문 선일농구가 분명 다시 일어설 수 있던 이유는 이렇게 학교의 관심과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초·중·고 코치가 함께 선수들을 관리하고, 지도자 선후배로서 소통하고 있다. 이런 지도자들의 사소한 모든 것 또한 선수들의 성장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선일여고 주장 하지윤
“선일은 초·중·고가 함께 운동하며 엘리트 농구부 중 가장 큰 체육관을 가지고 있다. 팀 성적도 나쁘지 않고 전력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2024년을 돌아봤을 때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다 함께 즐겁고 재밌는 시간을 보낸 팀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사진_배승열 기자, 선일여고 농구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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