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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 역대 한 경기 최다 득점은 58점이다. 2012년 2월 2일 삼성화재 소속이었던 가빈 슈미트의 기록이 여전히 1위다. 2009-10시즌부터 3시즌 연속 V-리그 챔피언결정전 MVP까지 거머쥔 에이스였다. 삼성화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가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빈의 인생에 큰 챕터가 된 3년
1986년생의 가빈은 캐나다 출신으로 2009년 V-리그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고 3시즌 맹활약했다. 최고의 외국인 선수라고 불릴 정도로 가빈의 위력은 대단했다. V-리그 데뷔하자마자 2009-10시즌 득점상, 공격상, 서브상에 이어 정규리그 MVP, 월간 MVP(12월), 올스타 MVP, 챔피언결정전 MVP까지 휩쓸었다. 정규리그에서 34경기 122세트 출전해 무려 1110득점을 터뜨리며 막강한 공격력을 드러냈다. V-리그 최초로 단일 시즌 1000점을 돌파한 선수이기도 했다. 2010-11시즌에도 그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득점상, 월간 MVP(2월), 올스타 MVP, 챔피언결정전 MVP를 거머쥐었다. 2011-12시즌에도 득점상, 공격상, 정규리그 MVP, 챔피언결정전 MVP, 1라운드 MVP의 주인공이 됐다. 3시즌 연속 삼성화재의 우승과 함께 ‘별 중의 별’이 된 것이다.

이 가운데 2012년 2월 2일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과 경기에서는 한 경기에서 무려 58점을 기록했다. 역대 V-리그 한 경기 최다 득점이다. 당시 가빈은 풀세트 접전을 치르며 공격으로만 52점을 터뜨렸다. 총 101회 공격을 시도했다. 공격 점유율은 67.79%였지만, 공격 성공률은 51.49%로 높았다. 삼성화재는 5세트 15-15에서 고희진 속공, 고희진 블로킹으로 승리를 거뒀다.

그렇게 가빈은 2009년 처음에 한국에 와서 보낸 3년을 잊을 수 없다. 그는 “한국에 오기 전 그리스에서 반년, 프랑스에서 풀시즌으로 1년을 뛰었었다. 한국과 일본리그에 대해 들었을 때 1명의 외국인 선수가 있고,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들었다. 내가 한국이나 일본에 오게 된다면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또 내 커리어에도 큰 도움이 돼 큰 돈도 벌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사실 그 전에 현대캐피탈과 테스트도 봤었다. 삼성에 오기 바로 직전이었다. 하지만 현대캐피탈과는 함께 하지 못했다. 내가 잘못했었다. 그래서 한국에 가서 ‘내가 잘하는 선수다’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며 솔직하게 말했다.

2009년 당시 V-리그 첫 인상은 어땠을까. 가빈은 “프로페셔널했었다. 아직까지도 폴란드 리그가 잘 돼있다고 하지만 한국은 내가 오기 1, 2년 전에 새로운 숙소와 훈련장을 지었다. 코트에 자국 하나 안 보일 정도였다. 다양한 종목을 관리하는 훈련장이었고, 늘 선수들에게 좋은 음식을 제공해줬다. 내가 있었던 프랑스는 그런 것들이 없었다. 숙식을 알아서 해야 했다. 정말 좋았다. 한국에서만큼 케어를 잘 받고 있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마치 내가 생각하는 NBA 같았다. 물론 그 곳은 더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만큼 구단이 프로페셔널하게 관리 운영을 잘해서 인상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남자배구 강호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으면서 부담감도 안고 있었다. 또 가빈이 삼성화재에 정착하기 전 외국인 선수는 안젤코 추크였다. 가빈은 “성적이 좋은 팀에서 뛴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스에서는 최하위여서 강등을 걱정했던 팀이었고, 프랑스에서는 12개 팀 중 7위였다. 삼성화재에 오니 주변에서 ‘가빈, 우린 지난 2년 동안 우승했어’라고 말하더라. 우승을 못하면 엄청 실망하는 팀이라고 들었다. 안젤코의 영상을 보고도 ‘나 진짜 잘해야겠는데!’라고 생각했다. 안젤코도 나중에 한국전력으로 왔던 것으로 안다. 선수들이 어떻게든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 이유는 리그가 워낙 잘 운영되기 때문이다. 한국 같은 리그가 많이 없다”고 말하며 지난 기억을 떠올렸다.

계속해서 “그렇게 우승을 못하면 실패한 시즌이겠구나 생각했다.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그 스트레스가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고 했다.

첫 시즌에는 남자배구 최고의 라이벌 팀이 챔피언결정전에서 격돌했다.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이 맞붙은 것. 삼성화재가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벌인 끝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가빈도 이를 기억하고 있다. 그는 “라이벌 구도가 강했다. 우리끼리는 ‘대한항공한테는 져도 현대캐피탈에는 지고 싶지 않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지금까지도 왜 그렇게 두 팀이 라이벌이 됐는지 모르겠다(웃음). 물론 우승을 번갈아 하면서 경쟁이 심하긴 했다. 그 일부에는 나도 있었다. 나 역시 현대캐피탈 입단 테스트에서 떨어지고 속으로 ‘이 팀은 날 원하지 않았다. 날 영입했어야 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나중에 깨달았다. 내가 그 당시에는 못해서 현대캐피탈에 못 갔다는 것을 알겠더라”고 말했다.

그러던 2010년 라이벌 팀에 있었던 박철우가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 나왔고, 삼성화재로 이적했다. FA 보상선수로 세터 최태웅이 현대캐피탈로 둥지를 옮겼다. 가빈은 “당시 소식을 듣고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해외에서는 선수들의 이적이 흔한 일이라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나와 같은 포지션의 선수가 오기 때문에 내가 포지션을 바꿔야 하나 생각도 했다. 또 태웅 선수가 떠났다. 내 절친이었다. 세터도 잃고, 같은 포지션의 선수도 오니 ‘리시브 연습을 더 해야 하나’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철우 선수랑 같이 생활하면서 정말 많이 친해졌고, 좋은 친구 사이가 됐다. 지금도 연락을 하며 지낸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시즌도 박철우와 함께 한 2010-11시즌이었다. 삼성화재에서의 두 번째 시즌이다. 가빈은 “시즌 중간에 꼴찌를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리시브를 했을 정도였다. 내 커리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즌이다. MVP도 받았지만, 우리 팀에 리베로 여오현 선수가 없었다면 우승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 MVP 트로피를 그에게 줬을 정도였다. 여오현 선수가 코트 곳곳을 누비며 패스부터 다 해줬다. 나와 철우 선수가 라이트 공격을 전담했는데 우리도 때때로 패스를 해야 했다. 오현 선수가 없었으면 어떻게 다 감당했을까 생각했다. 우승은 정말 대단 일이다. 다함께 이겨내고 팀으로서 성장했다. 첫 해에는 태웅 선수가 있었고, 2년차 때 변화가 많았다. 리빌딩의 시즌이었다. 세터는 유광우 선수였다. 석진욱 선수는 어깨를 다쳐서 리시브 가담을 많이 못했고, 내가 때로는 리시브를 했었다. 새로운 멤버들로 한 시즌 만에 판을 짜서 다시 우승을 했다. 대단한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해 12월 꼴찌를 하고 있을 때였다. 6승 정도 했던 것 같다. 어느날 구단 프런트가 오셨다. 무서웠다. 그런데 ‘우리는 늘 여러분을 지지한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을 안다. 코칭스태프도 잘하고 계신 것을 안다’고 말하셔서 구단 프런트도 우리와 함께 하고 있구나는 느꼈다. 결국 시즌 후반에 우리 팀만의 문화, 우승팀 분위기를 만들어서 전혀 다른 후반기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고 덧붙였다.



가빈에게도 의미있는 스토리다. 그는 “가장 성공에서는 멀었던 시즌 같았지만 가장 성공적인 시즌이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리빌딩 팀이 우승팀 전력까지 만들기 위해서는 2, 3년이 걸린다. 하지만 우리는 해냈고, 그 다음 시즌까지 이어갔다. 한국에 와서 어려움을 극복했던 일이자 큰 성공이었다. 사람들에게 얘기해주는 내 성공 스토리다”고 힘줘 말했다.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고 3년 연속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경험했다. 쟁쟁한 상대 선수들도 기억에 남는다. 가빈은 “맷 앤더슨은 정말 잘했다. 철우 선수도 챔프전 때 굉장했다. 공격적으로 봤을 때 대한항공에서 뛰었던 에반 페이텍도 잘했다. 시즌 내내 우리를 힘들게 했다. 또 김학민, 한선수, 김요한 등도 말할 수 있다. 워낙 경기 영상을 많이 봤고, 상대팀 선수들이 어떻게 플레이를 하는지 연구를 많이 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끝으로 가빈은 “계속 말하지만 한국은 내 커리어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내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어준 곳이다. 나의 일부분인 한국에 언젠가 다시 가족들과 가고 싶다”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7년 만에 다시 V-리그로 돌아온 가빈
2012년 한국을 떠난 가빈은 2019년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전력 소속으로 V-리그 무대에 오른 것. 가빈은 “삼성화재에서 3년을 뛰고 우승도 많이 해서 좋았지만 마음 속에 들었던 생각이 ‘난 행복하지 않다’였다. 물론 한국 생활은 정말 좋았다. 지금 그 때로 돌아간다면 다른 결정을 했을 것이다. 그 때는 ‘내 실력은 세계 배구에서 어느 정도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처럼 러시아, 이탈리아 리그 등에서 뛸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제 진짜 ‘나의 배구’가 어느 위치인지 도전하고 싶었다. 개인 삶의 질을 따진다면 아마 한국에서 영원히 살았을 것이다(웃음). 매너리즘에 빠졌던 것 같다. 이기는 것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난 도전을 즐기는 편이다. 그렇게 떠났을 때 언젠가 은퇴하기 전에 한국에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다. 또 내 커리어의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미 선수로서 오랜 기간 생활을 했다. 러시아에서 활약으로 올림픽 대표로도 뽑혔고, 튀르키예 등 다른 리그에서도 잘했다. 내가 진짜 사랑하는 곳으로 돌아가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자고 결심했다”며 한국 복귀를 결심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2019-20시즌 한국전력의 성적은 좋지 못했다. 정규리그 7위를 기록하고 있던 중 V-리그는 코로나19로 인해 조기 종료됐다. 가빈도 “한국전력에 돌아와서 보니 리그가 좀 더 안정된 밸런스를 갖춘 것이 느껴쪘다. 물론 한국전력은 많이 이기는 팀은 아니었다. 그래도 선수들이 출퇴근을 하면서 프로페셔널리즘과 개인의 자유가 생겼다. 리그가 계속 진화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렇게 가빈은 2020년 한국전력과 작별한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제2의 인생을 연 가빈
그리운 한국 친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가빈은 2020년 캐나다로 돌아가서 가족과 함께 새 시작을 알렸다. 새로운 일도 찾았다. 회사원이 됐다. 가빈은 “그 당시에는 걱정을 많이 했다. 시즌 종료 직전에 귀국을 했는데 캐나다가 국경을 폐쇄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들었기에 집에 못 갈까봐 걱정했다. 그래도 돌아와서 2, 3개월 후에 결혼을 했고, 첫째 아이도 태어났다. 새 직장도 얻어서 적응하려고 많이 애를 썼다. 그 후에 이사를 해서 정원도 가꾸고, 집에 페인트도 바르고 했다. 그 사이에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일도 더 해야 했다. 그럼에도 고향에 돌아와서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이 정말 좋다”고 밝혔다. 이어 “삶은 바빴지만 아빠가 되면서 내 삶을 훌륭하게 만들었다. 배구가 그립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가빈에게 V-리그는 무엇일까. 그는 “먼저 프로페셔널하다. 모든 경기가 TV로 중계가 된다. 구단 버스로 경기장을 이동하는 것도 잘 돼있다. 팬과의 소통도 마찬가지다. 리그가 프로페셔널하게 운영이 되고 있다. 또 집과도 같다. 어디든 가장 밀접하게 와닿는 곳이다”고 했다.

그리운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다. 가빈은 “배구 인생에 있어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있다. 여오현 선수는 오랫동안 날 아껴주던 큰 형 같은 존재다. 철우, 태웅도 그렇다.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함께 성장했다. 그냥 좋은 사람들이다. 한선수도 그렇다”며 “매경기 전에 철우와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기억도 난다. 철우가 경기력이 안 나와 좀 힘들어했다. 내가 경기 전날에는 꼭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언젠가부터 두 개를 사서 철우와 같이 먹었다. 배구 얘기도 하고 격려도 해주면서 먹었다. 가끔 오현도 와서 먹었다. 가족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 때문에 한국에 더욱 가고 싶은 것이다. 한국은 내게 제2의 고향이다. 고향은 가야하는 곳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V-리그도 가빈의 활약 덕분에 빛났다. 가빈 역시 제2의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다.

글. 이보미 기자
사진. KOVO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1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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