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뉴스
[24-10-17 06:02:00]
“그때 열이 받았다. '한 번 보여드려야겠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제대로 한 번 보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슈퍼스타' 린가드(FC서울)가 진정한 '서울맨'이 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털어놓았다.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 린가드는 올 시즌을 앞두고 서울에 합류했다. 그는 리그 21경기에 나서 5골-1도움을 기록했다. 부상으로 이탈한 기성용을 대신해 주장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린가드는 그라운드 안팎에서 활약하며 서울이 5년 만에 파이널A에 진출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사실 시즌 초반엔 우여곡절을 겪었다. 김기동 FC서울 감독이 “몇 분 뛰지 않는 선수가 몸싸움도 하지 않는다. '설렁설렁'하고, 90분 출전하는 선수보다 뛰지 못하면 선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름값'으로 축구할 것 같으면 은퇴한 선수들 데려다 놓으면 되는 것 아니냐. 하루 한 번 미팅으로 얘기하는데, (린가드가) 말은 '청산유수'다. 그게 행동으로 나오지 않으니 안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을 정도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날, 린가드의 마음가짐이 180도 바뀌었다.
린가드는 16일 서울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4' 파이널 라운드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그는 공식 행사 전 가진 기자회견에서 “시즌 초에 이렇게 힘들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약간은 '쉬엄쉬엄'해도 되겠지 하는 게 무의식 중에 있었던 것 같다. 감독님께서 공식적으로 나쁘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때 열이 받았다. '한 번 보여드려야겠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제대로 한 번 보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도 정신 차릴 수 있던 계기가 됐다. 스스로에게 속이지 말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했다. 매 훈련 때마다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좋아진 것 같다“며 웃었다.
린가드는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부상이란 악재를 딛고 팀의 에이스이자 정신적 지주로 거듭났다. 김 감독은 린가드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김 감독은 “내가 '설렁탕' 얘기하지 않았나? 설렁설렁 뛴다고. 아, 그 얘기를 하고 팬들께 많은 질책을 받았다. '급'도 되지 않는 감독이 선수에게 뭐라고 한다고. 린가드와 지금도 얘기하면 두 달 전에도, 네 달 전에도 컨디션이 100%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었다. 내 말이 맞았다는 것이다. 1년 반 동안 팀 찾지 못해 경기를 하지 않은 선수가 단기간에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전반기 뒤에 좋아질 것으로 봤다. 좋아지다가 수술을 했다. 공백기가 있었다. 이제야 올라오는 거다. 본인은 좋다고 하지만 한 80% 되는 것 같다. 나에게 '올해가 가기 전에 12㎞ 뛰는 것을 보여주겠다. 기대해달라'고 약속했다. 나는 많이 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고강도, 스프린트도 봐야한다. 그래도 린가드는 고강도 러닝이 많다. 린가드가 고강도에 12㎞ 이상 뛰면 정말 많이 뛴다고 봐야한다. 예전에 가장 많이 뛴 선수는 김승대였다. 12㎞ 이상 뛰면서 스프린트가 26회였다. 이게 말도 되지 않는 것이다. 스프린트가 그렇게 들어간다면 12㎞를 뛰었다고 해도 사실은 13㎞ 이상 뛴 것이다. 린가드도 많이 뛰는 스타일에 들어간다“고 했다.
김 감독은 린가드에 대한 에피소드를 하나 더 공개했다. 김 감독은 “사실 지난 6일 광주FC전 끝나고 린가드가 영국에 가는 것이었다. 12일에 딸이 학교 들어가고 생일이었다. 10일에 비행기 타고 가서 생일 파티하고 오는 것이었다. 타이트하다. 그래서 '6일 경기 끝나면 7일에 가지 왜 다 쉬고 가느냐'고 했다. 본인이 훈련을 하고 가겠다고 했다. 실제로 매일 나와서 훈련을 하긴 한다. 그런데 햄스트링 아팠던 곳이 타이트했다. '광주에서 두 시간 앉아왔다고 타이트한데 영국 다녀오면 안 된다. 강원전 45분 뛰게 할 것'이라고 했다. 린가드가 자기는 '뛸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건 네 생각이다. 뛰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당일에 비행기표 취소하고 치료했다. 재활하고 경기 준비했다. 모든 선수들이 린가드가 영국 다녀오는 줄 알았다. 선수들도 의아해했다. 선수들도 느끼는 바가 크다. 일류첸코는 한국 애가 다 됐는데, 린가드와 둘이 팀을 많이 이끌어 간다. 지금 기성용이 빠진 상황에서 지주다. 둘이 잘 이끌어 가고 있다“며 미소지었다.
린가드는 “딸 생일이었다. 오래 전부터 파티를 준비했다. 무조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파이널 라운드 들어가는 게 중요해서 오랜 시간 갈 생각은 없었다. 생일 전날 가서 생일 파티만 하고 저녁에 바로 한국에 들어올 생각으로 계획을 짰었다. 하지만 훈련하는 데 근육이 타이트한 느낌이 들었다. 14시간 비행기를 타야 하고, 시차도 다른 데 (영국) 다녀오면 몸이 망가질 수 있을 것 같다는 걱정이 됐다. 당일에 감독님께 '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씀 드렸다. 딸이 많이 서운해 했다. 통화하면서 아빠가 이런 상황이고 중요한 부분이라 가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고맙게도 딸이 잘 이해해줘서 잘 넘어간 것 같다“며 웃었다.
K리그에 완벽 적응한 린가드는 이제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린다. 그는 이날 김 감독은 제외한 5개 구단 감독의 러브콜을 받았다. 린가드는 “이 자리에 앉아있는 다섯 팀 모두 멋지다. 존중한다. 그러나 결국은 우리가 이길 것이라는 걸 말씀 드리고 싶다. 난 서울에서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다.
린가드는 “감독님이 시즌 초에는 조금 딱딱하다고 생각했다. 대화도 많이 하고 편하게 해주시는 부분이 생기면서 관계가 자연스럽게 좋아진 것 같다. 영국에서도 이렇게 1대1로 많이 대화한 감독님 밑에서 항상 좋은 모습 보였던 것 같다. 감독님이 많은 도움을 주신 것 같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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