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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미국이었다. 지난해 월드컵의 충격적인 실패에도, 세대교체가 중단됐다는 혹독한 평가에도 '역시 미국'이라는 말을 기꺼이 증명해냈다. 2008년 베이징에서 시작해 2024년 파리까지 이어진 올림픽 5연패. 4년 만에 돌아온 세계 농구 12강의 전쟁터에서도 최강자는 미국이었다.


*본 기사는 루키 9월호에 게재됐습니다.











릅듀커의 라스트 댄스


이번 파리 올림픽은 농구 팬들에게 낭만으로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르브론 제임스, 케빈 듀란트, 스테픈 커리가 국제무대에서, 그것도 올림픽에서 한 팀을 이뤄 뛰는 것을 지켜본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로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올림픽 이전에도 이룰 수 있는 건 거의 다 이뤘던 셋이다.


르브론 제임스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부터 대표팀 리빌딩의 최전방 기수였다.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고 국제무대를 떠났다. 위기에 빠졌던 미국 대표팀을 다시 정상에 올려놓았으니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던 셈이다.


케빈 듀란트는 '올림픽의 남자'였다. 만 19살에 불과했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발표된 최종 명단 12인에 아쉽게 들지 못했다. 하지만 4년 후 2012년 런던 올림픽이 열릴 때 케빈 듀란트는 3년 연속 NBA 득점왕을 차지한 '지구 1옵션'이 돼 있었다.


2012년을 시작으로 2016년 리우, 2020년 도쿄까지 듀란트는 자신의 전성기 여름을 올림픽 개근을 위해 기꺼이 바쳤다. 개근엔 곧 누적이 따라오는 법. 올림픽 농구와 관련된 득점, 야투 성공, 3점 성공 등에서 1위에 올라섰다. 미국 대표팀 역사상 최고의 득점 머신이었다.


리딤 팀의 기수 르브론과 올림픽의 남자 듀란트에 비해 스테픈 커리는 국제무대의 성과가 크진 않았다. 올림픽은 출전 경험이 없었고 2010년 터키 농구월드컵, 2014년 스페인 농구월드컵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했다.


사실 월드컵을 두 차례나 나간 커리 입장에서 올림픽은 무리해서 나갈 필요가 없는 무대였다. 때마침 타이밍이 안 맞기도 했다. 올림픽이 있었던 시기에 커리는 정점에 올라 있던 선수가 아니었거나(2012) 역대급 기록과 시즌의 피로감에 지쳐 있었다.(2016) 2020년 도쿄 올림픽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1년 미뤄져 열린 2021년 여름에는 소속 팀 골든스테이트가 한창 반등을 노리던 상황이었다. 커리 입장에선 월드컵 2회 우승으로 자신의 몫을 다했다고 생각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좀 달랐다. 미국 농구 대표팀은 2019년 월드컵에서 7위, 2023년 월드컵에서 4위에 머물며 세계 최강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는 팀이 된 상태였다.


애석하게도 후배들의 기량이 예전만큼 압도적이지 못했다.


제이슨 테이텀, 데빈 부커 등 자연스럽게 바통을 이어받아야 할 선수들이 유럽 강호들을 압도하지 못했고 앤써니 에드워즈는 너무 어렸다. 2023년 월드컵에 이어 2024년 올림픽에서도 우승하지 못한다면 미국에겐 상당한 굴욕이 될 수 있었다. 2023년 여름부터 '작당모의'를 시작한 르브론, 케빈 듀란트, 스테픈 커리는 그렇게 미국 대표팀에 돌아왔다. 전세계 농구 팬들이 한번쯤 보고 싶었던 '릅커듀' 트리오는 그렇게 탄생했다.











압도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 대표팀은 여느 때처럼 라스베이거스에서 소집됐다. 라스베이거스에서 평가전을 시작, 두바이를 거쳐 올림픽 개최지인 프랑스로 건너가는 일정이었다.


첫 평가전이었던 캐나다전부터 압도적인 수비력으로 상대를 무너뜨린 미국이다. 이후 세르비아, 독일, 호주 같은 다른 강호들도 무너뜨렸다. 남수단, 독일을 상대로 고전하긴 했지만 미국의 전력은 확실히 월드컵과는 달라보였다.


본선에서도 미국은 질주를 이어갔다. 거칠 게 전혀 없었다. 함께 C조에 배정된 세르비아, 남수단, 푸에르토리코를 손쉽게 눌렀다. 도합 317점을 폭격하며 +21.4점의 평균 득실마진을 만들어냈다. 토너먼트 첫 경기였던 8강에서도 브라질을 35점 차(122-87)로 대파했다. 거칠 게 없던 미국이었다.


고비는 4강부터 찾아왔다. 평가전에서 한 차례, 조별예선에서 한 차례 만났던 세르비아였다.


3주 만에 벌써 세 번째 맞대결. 사실 미국 입장에서는 자신감이 넘칠 수밖에 없었다. 평가전과 조별 예선 모두 26점 차 대승(105-79, 110-84)을 거뒀었기 때문이다. 니콜라 요키치가 이끄는 월드컵 준우승 팀 세르비아는 상성상 미국에 상대가 안 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었다.


하지만 4강전의 뚜겅을 열어보니 상황이 달랐다. 앞선 4경기에서 부진했던 스테픈 커리의 3점 폭격이 펼쳐졌지만, 세르비아는 단단해도 너무 단단했다. 강력한 방패로 미국의 전반 득점을 43점으로 묶는 데 성공했다. 이전 경기들에서 보였던 화력을 생각하면 미국의 이날 공격은 확실히 저조했다. 2쿼터 초중반 두 팀의 격차는 17점 차까지 벌어졌다. 반전이 있을 듯했던 3쿼터 막판에도 세르비아가 15점 리드를 잡자 미국의 조기 탈락이 현실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난 것은 4쿼터. 미국이 르브론 제임스의 강력한 속공과 커리, 부커의 활약을 앞세워 순식간에 격차를 좁혀왔다. 결국 4쿼터 막판 미국은 경기를 뒤집고 승리를 챙긴다. 총 40분의 경기 동안 미국이 리드를 가져간 시간은 고작 3분 25초. 세르비아가 미국을 얼마나 피말리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올림픽에서 저조한 득점력 때문에 FIBA 무대 무용설이 돌았던 커리는 3점슛 9개 포함 36점을 폭격하며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미국이 성공한 전체 3점슛(16개)의 절반이 넘는 숫자를 커리 혼자 성공시켰다.


결승에서 프랑스를 만난 미국은 끈질긴 프랑스의 추격에 적지 않게 고전했다. 미국이 달아나면 프랑스가 어떻게든 추격의 기회를 만들었다. 대부분이 시간 동안 미국이 리드했지만 프랑스가 집요하게 추격을 노렸다. 하지만 4쿼터 마지막 3분 동안 벌어진 커리의 3점슛 폭격 속에 결국 승리는 미국에게 돌아갔다. 르브론 제임스는 속공으로 경기를 지배했고, 케빈 듀란트는 수시로 찬물 득점을 만들어냈다. 쐐기는 커리의 몫이었다.


결국 미국은 2008년부터 2024년까지 올림픽 5연패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대회 MVP는 40세 노장 르브론 제임스의 몫이었다. 미국은 이번에도 자존심을 지켜냈고, 세계 농구의 최강자임을 입증했다.


미국 대표팀 평가전&올림픽 본선 경기 결과
7월 11일 vs 캐나다(평가전) 86-72 승
7월 16일 vs 호주(평가전) 98-82 승
7월 18일 vs 세르비아(평가전) 105-79 승
7월 21일 vs 남수단(평가전) 101-100 승
7월 23일 vs 독일(평가전) 92-88 승
7월 29일 vs 세르비아(올림픽 본선) 110-84 승
8월 1일 vs 남수단(올림픽 본선) 103-86 승
8월 4일 vs 푸에르토리코(올림픽 본선) 104-83 승
8월 7일 vs 브라질(올림픽 8강전) 122-87 승
8월 9일 vs 세르비아(올림픽 준결승) 95-91 승
9월 11일 vs 프랑스(올림픽 결승) 98-87 승











2028년 LA는 어떨까


올림픽 5연패에 성공한 미국 농구 대표팀은 2028년 홈 LA에서 6연패에 도전한다. 팬들의 시선 역시 이미 LA로 향하고 있다. 관건은 이때도 미국이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느냐다.


가장 우려를 사는 것은 릅듀커의 대표팀 은퇴다. 르브론 제임스 스스로가 칭한 것처럼. 이번 미국 대표팀은 르브론, 듀란트, 커리가 함께 뭉친 일종의 슈퍼 팀이었다. 이들 3인방을 중심으로 조엘 엠비드, 즈루 할러데이 같은 베테랑은 물론 젊은 선수들이 힘을 보태며 우승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르브론, 듀란트, 커리는 이미 30대 중반 혹은 40대에 들어선 노장이다. LA 올림픽이 열리는 4년 뒷면 르브론은 이미 선수 생활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듀란트, 커리 역시 그럴 가능성이 있다.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더라도 지금처럼 경기를 지배하는 기량을 유지하고 있을지는 미지수다.


애석하게도 황금세대인 르브론, 듀란트, 커리를 이을 후배들의 경기 지배력은 선배들에 미치지 못한다. 앤써니 에드워즈가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아직은 배울 것이 많은 입장이고 FIBA 무대에서의 경기력은 불투명하다. 제이슨 테이텀은 이번 올림픽에서 출전 기회를 많이 얻지 못하며 우려를 샀고, 타이리스 할리버튼 역시 거의 뛰지 않았다. 미국 국적을 딴 후 올림픽에 나섰던 조엘 엠비드도 4년 뒤엔 30대 중반의 노장이다.


4년 사이에 새로운 얼굴이 대거 등장하지 못한다면, 미국은 LA 올림픽 우승은 물론 장기적으로 세대교체에 대한 우려도 안을 수 있다. 제이슨 테이텀, 데빈 부커, 타이리스 할리버튼, 앤써니 에드워즈가 국제무대에서 더 좋은 지배력을 보여줘야 하고 아직 성인 대표팀 합류 경험이 없는 자 모란트와 자이언 윌리엄슨의 합류 여부도 관건이다. 물론 늘 그랬듯 올림픽을 앞둔 미국은 답을 찾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기대보다는 걱정이 먼저 드는 것이 사실이다. 파리 올림픽이 전성기의 마지막 불꽃이 되지 않으려면, 미국은 지금부터 4년 뒤를 준비해야 한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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