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뉴스
[24-10-11 19:08:43]
한국 V-리그는 외국인 감독 전성시대다. 하지만 한국인 지도자 역시 해외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2024-25시즌 V-리그 남자부, 여자부 총 14개 팀에서 외국인 사령탑만 6명이다. 역대 최대 인원이다. 특히 남자부 7개 팀 중 5명의 외국인 감독이 V-리그 무대에 오른다. 지난 시즌 함께 했던 대한항공 토미 틸리카이넨(핀란드) 감독, OK저축은행 오기노 마사지(일본) 감독에 이어 올해만 3명의 뉴페이스가 등장했다. 현대캐피탈의 필립 블랑(프랑스) 감독과 우리카드의 마우리시오 파에스(브라질) 감독, KB손해보험의 미겔 리베라(스페인) 감독이 V-리그 데뷔를 앞두고 있다. 국적도 다양하다. 여자 프로배구에는 흥국생명을 지휘하는 마르첼로 아본단자(이탈리아) 감독이 있다.
뿐만 아니다. 남자배구, 여자배구 성인 대표팀 사령탑도 모두 외국인이다. 올해 남자배구는 사상 최초로 외국인 감독을 선임했다. 이사나예 라미레스(브라질) 감독과 도약에 나섰다. 여자배구는 스테파노 라바리니(이탈리아) 감독과 세자르 에르난데스(스페인) 감독에 이어 페르난도 모랄레스(푸에르토리코) 감독이 새 사령탑으로 왔다.
국내 지도자 풀이 한정돼있는 가운데 각 팀에서는 팀의 변화를 위해 외국인 감독에게 눈을 돌리고 있다. 이로 인해 국내 지도자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사례가 빈번해졌다. 그리고 해외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가장 먼저 ‘페루 배구의 영웅’으로 불린 고 박만복 감독이 있었다. 1974년 배구 불모지인 페루 여자배구 대표팀으로 지휘봉을 잡았고, 1980년 모스크바와 1984년 LA, 1988년 서울, 2000년 시드니 올림픽까지 총 4번의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이 가운데 1988년 서울에서 열린 올림픽에서는 결승 진출에 성공하며 러시아와 마지막 승부를 펼쳤다. 은메달을 획득하며 페루의 국민 영웅이 됐다. 국제배구연맹(FIVB) 세계선수권에서도 1982년 은메달, 1986년 동메달을 거머쥔 바 있다.
이후에도 이탈리아에서 배구 선수로 활약한 박기원 감독, 김호철 감독은 그곳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박 감독은 1982년부터 2002년까지 이탈리아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고,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이란 남자배구대표팀을 맡았다. 그 시간은 이란의 가파른 성장의 발판이 됐다. 김호철 감독도 1995년부터 2003년까지 이탈리아 클럽팀은 물론 연령별 대표팀을 지도하며 유명세를 떨쳤다.
계속해서 페루,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에서도 한국 지도자들이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국내 지도자들이 유럽 혹은 일본의 선진 배구를 눈으로 직접 보며 시야를 넓히기 위해 해외 연수에 나서는 경우도 많다.
1951년생의 박 감독은 태국에서도 신망이 두텁다. FIVB 코치 지원 프로그램은 1년 계약으로 이뤄진다. 태국은 박 감독과의 동행을 원한다. 그를 놓치고 싶지 않다. 박 감독은 “태국에서는 있을 수 있을 때까지 있으라고 한다”고도 했다.
태국 남자배구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 박 감독이다. 20년 전에는 어떻게 이란 남자배구를 바꿨을까. 현재 이란 남자배구는 FIVB 세계랭킹 15위의 팀이다. 그는 “내가 이란에 갔을 때는 한국, 중국, 일본 다음으로 5, 6위 정도 되는 팀이었다. 이후 아시아 톱, 세계 상위권까지 올라갔다. 그때 당시에는 트레이닝 장소와 방법부터 모든 것을 바꿨다. 트레이닝도 내게 직접 다 소화하면 안되냐고 하더라. 그래서 트레이닝 코치와 분석관도 다 데려왔다. 이란 사람들은 내가 이란 배구를 만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최근에도 이란배구협회 쪽과 소통을 하고 있는데, 좋은 조언을 달라며 이란으로 오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도희 감독 역시 이란에서 막중한 역할을 맡았다. 대표팀 운영에 이어 이란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까지 맡게 됐다. 이 감독은 “이번 세미나를 통해 기본기 얘기를 하려고 한다. 일본 선수들을 보면 기본기가 탄탄하고, 똑같은 자세로 플레이를 한다. 이 기본기 훈련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한다. 이란 여자배구 선수들도 잠재력이 있다. 기본기를 갖춰놓은 뒤 테크닉을 입히면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힘줘 말했다.
해외에서는 팀의 기틀을 다지는 데 한국 감독이 적임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앞서 이 감독도 한국 지도자의 능력에 대해 “한국 지도자들이 선수들의 기본기 훈련 뿐만 아니라 각 선수들의 장점을 파악하고, 이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팀을 구성하는 힘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최근 한국 지도자를 찾는 팀들도 많다. 박 감독도 한국 감독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박 감독은 “아시아 쪽에서는 한국 감독을 원하는 팀이 많다. FIVB 프로그램의 경우 대표팀에만 해당되지만, 클럽팀에서도 원하는 팀들이 더러 있다. 다만 조건이 있다. 영어로 소통이 가능해야 한다”고 했다. 해외로 진출하는 선수뿐만이 아니라 감독도 결국 언어가 중요한 셈이다.
박 감독이 지켜본 이란 여자배구는 어떠할까. 그는 “이란 남자배구에 비하면 수준이 낮다. 특히 이란 여자배구는 여성 지도자가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이도희처럼 화려한 경력을 가진 여성 지도자는 없다. 협회에서도 잘 지원을 해준다면 이란 여자배구를 성장시킬 수 있는 유일한 지도자라고 생각한다”며 이 감독을 치켜세웠다. 이 감독의 든든한 조력자다.
이 감독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다. 하지만 그만큼 해내고 싶은 마음도 크다. 아울러 후배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좋은 선례가 되기 위해 무던히 노력 중이다.
글. 이보미 기자
사진. AVC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0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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