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뉴스
[24-09-02 08:47:00]
[파리=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아버지, 사랑합니다.“
'무뚝뚝의 대명사' 경상도 사나이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지천명(知天命·50세)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가슴 속에 차 오르는 감격과 회한을 어찌 막으랴. 2024년 파리패럴림픽에 출전한 한국 배드민턴의 최연장자 정재군(48·울산중구청)은 생애 처음으로 나선 패럴림픽 무대에서 쟁취한 은메달을 목에 건 채 끝내 눈물을 보였다.
정재군은 2일 새벽(한국시각) 프랑스 파리 포르트 드 라 샤펠 아레나에서 26살 차이 파트너 유수영(22·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짝을 이뤄 패럴림픽 배드민턴 남자복식(WH1, 2등급) 결승전에 출전했다. 상대는 중국의 마이지안펑-취쯔모 조. 하필 '최강의 적'이었다. 지난 스페인 세계선수권 대회 때 만나 힘도 쓰지 못하고 당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다른 결과를 기대했다. 정재군은 중국과의 결승전을 앞두고 “당시에는 패럴림픽 출전권 획득을 위해 개인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복식 경기는 좀 내려놓은 상태였다. 워낙 강한 상대지만, 이번에는 이겨보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상대는 막강했다. 유수영과 최선을 다해 맞붙어 봤지만, 39분 만에 세트스코어 0대2(10-21 12-21)로 지고 말았다. 비록 금메달은 놓쳤지만, 정재군에게는 빛나는 은메달이 남았다. 패럴림픽 첫 출전에서 이룬 값진 성과였다.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 패럴림픽 메달'이 될 수도 있다. 내심 '이번대회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 정재군은 결승전을 마친 뒤 감회 어린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원래 2020 도쿄패럴림픽 출전을 목표로 했다가 출전하지 못했다. 이후에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겨우 출전하게 돼 기뻤다. '메달 하나라도 따자'고 마음 먹었는데, 이루게 돼 정말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다. 힘든 노력의 순간마다 힘이 되어줬던 '평생의 조력자'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된 정재군의 조력자는 바로 아버지였다. 늘 아들에게 칭찬과 격려, 위로를 아끼지 않았던 분이다. 그런 아버지가 패럴림픽을 2개월 여 앞둔 지난 6월에 세상을 떠났다. 전혀 예견할 수 없었다.
정재군은 “스코틀랜드 세계선수권에 나가기 며칠 전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패럴림픽에 나가게 됐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상태가 조금 나아지셨는데…“라며 눈물을 보였다. 패럴림픽 메달 획득의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고 싶은 아버지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게 다시 정재군의 마음을 아리게 한 듯 하다.
만감이 교차한 듯 잠시 허공을 응시하던 정재군은 아버지를 추억했다. “대회에 나가면 잘 했다고 해주시고, 못하면 '그 정도만 해도 잘했다. 괜찮다'고 격려해주시던 분이다. '패럴림픽에서 무슨 색깔이든 상관없이 매달을 꼭 따서 가져다 드리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 다짐을 이루게 된 점이 기쁘다.“ 정재군은 메달을 아버지께 바치기로 했다. 분명히 하늘에서 보고 계실 것이라는 믿음을 품고 외쳤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눈물 젖은 은메달과 함께 전하는 정재군의 사부곡(思父曲)이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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