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뉴스
[24-09-03 11:12:49]
충남대학교는 최근 몇 시즌 동안 대학배구 무대에서 강팀들을 위협하는 복병이었다. 중부대학교·한양대학교·인하대학교 등 대학 무대를 대표하는 강호들이 모두 충남대에게 진땀을 뺐다. 그러나 충남대는 항상 골리앗 같은 상대를 고전시켰을 뿐, 그들을 최종적으로 쓰러뜨리지는 못하면서 진정한 다윗으로 거듭나지는 못했다. 이제는 진정한 다윗이 되기 위해, 충남대는 과감한 변화를 시도한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배구를 해보고자 한다. 과연 그들이 대학배구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을까.
위기를 기회로! 서로를 돕고 있는 충남대×대전중앙고
<더스파이크>가 충남대 배구부를 만나러 간 날은 8월 20일이었다. 그런데 그들을 만난 장소는 충남대 체육관이 아닌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대전중앙고등학교 체육관이었다. 충남대 체육관이 리모델링에 들어간 탓에, 여름방학 동안 훈련을 할 다른 장소를 찾아야 했다. 다행히 인근의 대전중앙고 체육관에서 배구부가 훈련을 하고 있었고, 충남대와의 합동훈련을 대전중앙고 배구부에서 흔쾌히 수락하며 두 팀의 여름 동거가 시작됐다.
다행히 두 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대전중앙고는 8월 22일부터 강원도 삼척에서 열리는 CBS배 전국중고배구대회 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더 크고 경험이 많은 충남대 배구부를 좋은 스파링 파트너로 만나게 됐다. 당장 훈련 장소를 구해야 했던 충남대로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훈련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었기에, 대전중앙고와의 연습경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날도 두 팀은 오후 3시 30분부터 함께 체육관을 찾아 몸을 풀기 시작했다. 스트레칭과 볼 웜업을 진행한 뒤, 두 팀이 곧바로 연습경기를 치렀다. 충남대에서는 김준서-홍세화-유정우-장아성-이동윤-전우준-김동준이 선발로 코트를 밟았다. 충남대 선수들이 한 수 위의 노련함으로 경기를 리드했지만, 대전중앙고의 패기가 돋보이는 플레이들도 나왔다. 뜻밖의 돌발상황이 만들어낸 의미 있는 협력의 장이였다.
조금은 아쉬운 한해를 보낸 충남대, 멋진 마무리를 위한 변화 돌입!
충남대의 2024년은 아직까지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2024 KUSF 대학배구 U-리그에서는 중부대·성균관대·명지대·홍익대·목포대·우석대와 함께 A조에 편성됐고, 최종 2승 4패를 거뒀다. 전력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목포대-우석대전을 모두 잡고, 나머지 팀들을 상대로도 1승 이상을 거두는 것이 목표였지만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특히 아쉬웠던 것은 성균관대·중부대·홍익대를 상대로 모두 풀세트 접전을 벌였지만 5세트 패배를 당한 부분이었다. 이기범 감독은 “강팀들을 상대로 5세트를 끌고 간 것은 분명 수확이다. 경기력이 받쳐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또 세 경기 모두 원정경기였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목표였던 강팀 상대 1승 이상 수확은 결국 이루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고 U-리그를 돌아봤다.
단양과 고성의 여름을 뜨겁게 달군 연맹전 1-2차 대회도 아쉬움이 가득했다. U-리그 일정이 전반기에 다 몰려 있었던 충남대로서는 체력적인 문제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코트 위에서 움직임을 부지런히 가져가는 충남대의 플레이스타일상 체력 문제는 치명타로 다가왔다. 단양대회에서는 3승, 고성대회에서는 조선대전 승리가 목표였지만 두 목표 모두 아쉽게 달성하지 못한 채 연맹전 일정까지 모두 마무리했다.
그러나 아직 중요한 대회인 전국체전이 남아 있다. 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멋진 마무리를 할 수 있다. “우선 체전은 대진 뽑기 운이 제일 중요하다”며 웃음을 터뜨린 이 감독은 “팀의 플레이스타일에 대폭 변화를 줬다. 변화의 핵심은 세터의 적극적인 세트 플레이 시도와 수비 포메이션의 변경에 있다. 완전히 다른 배구를 하게 될 것이다”라며 스타일의 천지개벽을 예고했다. 변화의 이유는 생존과 목표 달성을 위함이다. 이 감독은 “강팀들은 현상유지만 해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계속해서 변화를 시도하면서 좋은 팀을 만들 것이다. 프로팀들로부터 도움도 받고 있고, 국제대회도 많이 참고하면서 우리의 훈련과 경기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체전에서 우리를 상대하는 팀은 분명 처음에 당황하게 될 것이다. 그걸 활용해서 치고 나가보겠다”며 체전 출사표를 던진 이 감독이다.
충남대 배구부의 발전 비결은? 모든 것 공유하기+각자의 꿈 존중하기
충남대를 비롯해 중부대·조선대 등 지방대들의 발전과 약진이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대학배구의 중심에는 수도권 대학들이 위치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감독 역시 이를 인정한다. 그러나 충남대는 그들의 방식으로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키워간다. 이 감독은 팀 훈련과 운영의 핵심으로 ‘모든 것의 공유’를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각자의 일정부터 원하는 플레이 방향성, 컨디션까지 모든 것을 공유한다. 이를 통해 수평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지금 내가 추구하는 배구는 나조차 현역 때 하지 못했던 새로운 배구다. 이걸 구현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존중해줄 수 있어야 하기에, 모든 것을 공유하면서 우리만의 약속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감독은 포지션별 단체 메신저 방을 운영하면서 선수들에게 영상을 공유하기도 하고, 선수들이 스스럼없이 다가와서 시도하는 다양한 주제의 대화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대학배구 무대에서 가장 젊은 감독인 그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우리 팀만의 수평적인 문화가 잘 구축된 것 같다. 그렇다고 선수들이 선을 넘지도 않는다”며 만족감을 드러낸 이 감독은 “동기들이나 선후배들 중 프로팀 코치로 활동하거나, 배구 센터를 운영하는 배구인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대학팀 감독으로 일하는 게 너무 좋다. 내가 하고 싶은 배구를 구축할 수 있고, 그에 대한 피드백도 성적을 통해 즉각 오는 게 좋다. 피드백이 오고 난 후에는 내 구상에 대한 확신을 얻거나, 고칠 부분들을 고쳐나가게 되는데 그 과정은 나도, 선수들도 즐겁게 헤쳐나가고 있다”며 충남대 감독직에 대한 애정도 숨기지 않았다.
이 감독은 지방대의 고충인 선수들의 배구에 대한 동기부여를 해결하는 방식도 소개했다. “우리 학교를 비롯해 지방대 배구부에 입부하는 선수들의 경우, 모든 선수들이 프로 진출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고 솔직한 이야기를 먼저 꺼낸 이 감독은 “그래서 팀의 운영 목표를 하나로 정해두지 않는다. 선수들을 프로에 보내는 것도, 대회에서 성적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목표가 모두의 단일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이곳에 무슨 목표로 들어왔는지, 또 지금 어떤 것들 때문에 힘든지가 다 다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 감독은 “대학이라는 공간은 진로 탐색의 최종 단계를 거치는 곳이지 않나. 운동부라고 다르지 않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2학년까지는 다양한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려고 한다. 그리고 3학년에 들어설 때, 최종적인 방향을 결정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 계속 배구를 하겠다고 결정하는 친구들은 프로 진출을 목표로 할 수 있도록 돕고, 자격증을 따거나 학교 생활에 더 집중하고 싶은 친구들은 또 그럴 수 있도록 돕는다. 대신 이 과정도 모든 선수들이 함께 공유한다. 그래야 얼굴을 붉히지 않고 각자의 길에 집중할 수 있고, 서로를 응원해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렇게 각자의 길을 선택해 나아간 선수들 중 배구에 모든 것을 걸기로 결정해 이번 2024-2025 V-리그 남자부 신인선수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된 4학년 선수는 총 네 명이다. 아웃사이드 히터 장아성-유정우, 세터 김효민, 미들블로커 전우준이 프로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감독은 “정말 열심히 한 선수들이다.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드래프트에서 뽑히지 못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네 선수 모두 아직 젊디젊은 선수들이다. 배구선수로서도, 혹은 다른 길로 나아가서도 멋진 삶을 살 수 있다. 그럴 수 있길 바란다”며 사랑하는 제자들을 응원했다.
4학년 장아성도, 1학년 신동건도 충남대 선수임이 자랑스럽다
충남대의 좌우 쌍포인 4학년 장아성과 1학년 신동건은 완벽한 신구조화로 팀의 공격을 이끄는 선수들이다. 장아성은 “리베로도 소화 가능할 것 같은 선수다. 볼의 길을 찾는 눈이 정말 좋다”는 프로팀 관계자의 평이 있을 정도로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선수고, 신동건은 1학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결정력과 파워를 갖춘 공격수다. 장아성의 졸업과 드래프트 참가가 임박한 만큼, 좌우 쌍포가 함께 할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다가오는 전국체전에서 두 선수는 마지막 호흡을 후회 없이 맞춰볼 참이다.
대전중앙고와의 연습경기가 후반부로 접어들었을 때, 두 선수를 함께 만나볼 수 있었다. 신동건은 어깨 컨디션이 완벽하지 않아 경기에 나서지 않았고, 장아성은 1-2세트를 소화한 뒤 휴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두 선수에게 자기소개가 아닌 서로에 대한 소개를 부탁했다. 장아성은 “동건이는 1학년 아포짓이다. 파이팅이 정말 좋고, 공격력도 뛰어나서 팀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선수”라고 아끼는 동생을 소개했고, 신동건은 “아성이 형은 팀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아웃사이드 히터다. 형도 저 못지않게 파이팅이 좋은 선수고, 동생들을 잘 이끌어주는 선배다”라며 화답했다. 롤 모델을 묻는 질문에는 공교롭게도 두 선수가 모두 현대캐피탈의 선수들을 골랐다. 장아성은 “국내에서 가장 공수 밸런스가 좋은 선수라고 생각한다”며 전광인을, 신동건은 “초등학교 때부터 롤 모델이었다. 포지션에 맞는 플레이를 잘하고, 리더십도 뛰어난 선수 같다”며 문성민을 선택했다.
두 선수에게 충남대를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장아성은 “처음부터 충남대에 오고 싶었다. 충남대로 진학한 고등학교 선배들이 추천도 해주셨고,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기 좋은 환경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는 이유를, 신동건은 “충남대의 경기 영상을 많이 봤는데 마음에 들었다. 또 팀 분위기가 워낙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는 이유를 소개했다. 실제로 충남대에서 시간을 보내본 결과, 두 선수는 기대했던 바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장아성은 “선후배 관계가 정말 끈끈하고, 악습도 전혀 없는 팀이다. 운동 시간에 최선을 다하면 개인 시간의 자유도 철저히 보장되는 팀”이라며 충남대의 장점을 소개했다. 그러자 신동건은 “형이 말한 그대로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두 선수는 이기범 감독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이 감독과 4년을 함께한 장아성은 “젊은 감독님이시다보니 선수들과의 소통이 정말 원활하고 자유롭다. 배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모르는 게 있을 때도 언제든지 질문을 받아주신다. 정말 좋은 분이다”라며 이 감독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이 감독과의 첫 해를 보낸 신동건은 “공사 구분이 정말 확실하신 분이다. 운동을 할 때는 확실하게 운동에 열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평상시에는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우리를 존중해주신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후 장아성과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까지 치른 대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가 있는지 묻자 장아성은 “2학년 때 나갔던 전국체전이 기억에 남는다. 4강에서 한양대를 만났는데, 그간 우리가 한양대를 상대로 늘 어려운 경기를 했었는데도 그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고 결승에 올랐다. 결승에서는 중부대에게 아쉽게 져서 은메달을 땄지만, 대학 무대에서 처음 딴 메달이라서 기억에 남는다”며 기분 좋게 그 때를 회상했다. 그렇게 좋은 추억들을 쌓아가다 보니 어느덧 4학년이 됐다. 이제 장아성의 앞에는 전국체전, 그리고 최대의 관문인 드래프트가 남아 있다. “처음에는 되게 떨렸다. 그런데 이제는 뭔가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기다리는 중”이라며 덤덤한 모습을 보인 장아성은 “나는 지난 4년 간 정말 열심히 해왔다. 그렇기에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좋은 결과가 나와 프로에 가게 된다면,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할 자신이 있다. 언제나 악착같이 하는 선수가 되겠다”며 다부진 포부를 드러냈다.
그런 장아성을 옆에서 밝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신동건은 “형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보진 못했지만, 아성이 형을 비롯한 우리 팀의 4학년 형들은 모두 부족함이 없고 늘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이었다. 또 동생들을 잘 챙겨주기도 했다. 형이 어딜 가더라도 제몫을 할 수 있는 선수라고 믿는다”며 진심어린 응원을 건넸다. 곧 들어올 1학년 후배들을 이끌어줄 좋은 선배가 될 수 있겠냐는 질문에는 “새로운 1학년 선수들이 온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는 것 같다. 형들이 만들어온 좋은 전통은 꾸준히 유지하고 싶다. 그러면서도 후배들이 운동에 매진할 수 있는 좋은 분위기를 잘 다질 수 있도록 내 역할을 잘 해야 할 것 같다”는 의젓한 대답을 내놨다.
충남대 배구부와 동료들에 대한 자부심을 계속 드러낸 두 선수에게, 예비 대1 후배들을 위한 팀 소개와 어필을 부탁했다. 그러자 두 선수는 짠 듯이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장아성은 “요즘 고등학교 선수들 사이에서 충남대의 자유롭고 좋은 분위기가 잘 알려진 것 같다. 그 분위기는 진짜다. 운동은 힘들지만, 열심히만 한다면 우리만의 자유롭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운동을 열심히 해야만 가능한 것이다(웃음). 속된 말로 ‘꿀 빨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길 바란다”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후배 신동건 역시 “결코 운동량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아성이 형이 말한 것처럼 너무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오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운동을 열심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선수라면 누구든 대환영이다. 얼마든지 팀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다”라며 후배들에게 달콤살벌한 초대장을 날렸다.
두 선수는 끝으로 이 감독에게 인사를 남겼다. 장아성은 “4년 동안 충남대에서 감독님께 정말 많은 걸 배웠다. 그럼에도 저는 아직 배울게 많은 사람인 것 같지만, 감독님 덕분에 보잘것없는 선수가 조금이나마 좋은 선수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정말 감사드린다”며 감동적인 인사를 전했다. 신동건은 “지금까지는 많이 부족한 모습을 보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열심히 가르쳐주시고 도와주셔서 감사드린다. 앞으로 배울 게 더 많을 것 같은데, 제 몸이 다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웃음). 열심히 준비해서 잘 따라가겠다”며 씩씩한 이야기를 전했다. 충남대 배구부의 저력과 매력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 두 선수와의 만남이었다.
글. 김희수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9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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