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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내내 몸과 몸이 부딪히고 쉼없이 뛰어다녀야 하는 동적인 스포츠 농구에서 빠르지 않다는 것은 상당한 핸디캡이다. 공격시 상대를 제치거나 수비시 움직임을 따라가기 버겁기 때문이다. 수많은 페이크와 거기서 파생되는 연결 동작에 대한 반응에서도 불리할 수밖에 없다. 불필요한 생각이 많아지고 다음 플레이로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한 템포 씩 늦기 일쑤다.


역대로 봐도 리그 상급 수준의 스피드를 갖춘 선수들은 대부분 기본 이상은 보여줬다. 사이즈, 스킬에서 아쉬운 면이 있어도 빠르게 움직이고 달려서 이를 커버했다. 거기에 준수한 슈팅력까지 장착한 상태면 얼마든지 롱런도 가능하다. 반대로 느린 축에 속하면 포지션 불문 고전을 면치 못했다.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느린 선수들은 점프력 등 기타 운동능력 역시 좋다고 보기는 힘들다. 고교 시절 무시무시한 득점력을 뽐내며 NBA 레전드 득점 머신에 빗댄 별명으로 불렸던 모 듀얼가드, 전체 1순위로 지명될 만큼 대형 슈터 재목으로 꼽혔던 모 슈팅가드 등은 사이즈도 아쉬웠지만 무엇보다 스피드에서의 단점이 뼈아팠다.


꼭 ‘날쌘돌이’ 얘기를 들을 만큼 빠르지는 않더라도 리그 평균 이상으로만 달리고 움직일 수 만 있었어도 그들이 가진 좋은 무기는 더욱 빛을 발했을 것이 분명하다. 아니 커리어 자체가 달라졌을 공산도 크다. 공격시 수비수의 밀착 마크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수비시에도 유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역대 최고의 4번으로 불리는 김주성은 현역시절 205cm의 장신임에도 어지간한 스윙맨 못지않게 뛰어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전까지의 빅맨들은 골밑에서 버티어야하기 때문에 힘을 키우는데 주력했지만 김주성은 달랐다. 발이 빨라 속공시 피니셔로 위력을 떨쳤고 수비시에는 넓은 범위를 오가며 쉴새없이 블록슛을 날려 상대팀을 부담스럽게 했다.


이상민, 주희정, 신기성, 김승현, 양동근 등 한시대를 주름잡은 야전사령관들도 하나같이 빨랐다. 토종 기준 최고 수준의 스피드가 없었다면 레전드 커리어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빅맨이 상황은 낫겠지만 하승진처럼 아예 차원이 다른 사이즈를 가지고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스피드 유무는 경기력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과거에는 이른바 몸빵용 백업 빅맨 자리라도 있었지만 최근 트랜드에서는 그마저도 의미가 없어졌다.


때문에 빠르지 않으면서도 좋은 커리어를 남겼거나 경기력을 보인 선수는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하다. 분명히 불리한 요소가 많음에도 다른 부분을 끌어올려 이를 메워냈다. 그들의 공통점이 있으니 다름 아닌 BQ가 좋다는 것이다. 상대의 움직임을 반박자 빠르게 읽어내거나 미리 파악하지 않고서는 스피드를 커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느리지만 영리한 선수들은 타이밍 빼앗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상대를 공략한다. 그런 점에서 수원 KT 문정현(23‧194.2cm)은 대단하다. 다재다능한 공격스킬은 둘째치고 수비시 전 포지션 매치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느리고 어정쩡한 사이즈임에도 빠른 가드와 힘세고 큰 빅맨 모두에게 어느 정도 상대가 되는게 신기할 지경이다.


그만큼 영리하고 경기를 읽는 눈이 대단하다고 보는게 맞다. 이전에도 빠르지 않았지만 영리하게 잘했던 선수들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공격에 비해 수비에서 고전했다. 문정현은 다르다. 수비까지 잘한다. 단순히 잘하는 수준을 넘어 리그 최고의 디펜더로 꼽히는 팀 선배 문성곤(31‧195.6cm)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 


문정현은 고려대 재학시절부터 많은 지도자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폭발적인 득점력, 미친듯한 활동량, 포스트 장악력 등 특정 부분에서 눈에 확 뜨는 선수는 아니었다. 때문에 그를 잘 모르는 이들은 ‘색깔을 알 수 없다’고 혹평을 하기도 했다. 현장의 의견은 달랐다. 적어도 그의 경기를 본 이들은 하나같이 빼어난 재능에 대해 칭찬일색이었다.


빨간색, 노란색, 검정색? 문정현은 특정 색깔로 논할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다. 두루두루 잘하기 때문이다. 구태여 표현하자면 무지개다. 4번에 가까운 포워드임에도 넓은 시야와 센스를 바탕으로 야전사령관 역할이 가능하다. 고려대 시절부터 컨트롤타워 역할을 많이 소화했던지라 경기운영 능력은 어느정도 검증되었다고 보는게 맞다.


이같은 영리함을 바탕으로 수비에서도 자신보다 빠른 선수를 곧잘 막아낸다. 힘도 좋은 편인지라 큰 선수와의 몸싸움에서도 쉽게 밀리지않는다. 전체적인 경기 흐름을 읽어내는 능력이 탁월하기에 가능한 플레이다. 때문에 지난해 신인드래프트에서도 박무빈(24‧184.4cm), 유기상(23‧188cm)을 제치고 전체 1순위로 지명받을 수 있었다.


첫 시즌은 아쉬움이 컸다. 두루두루 잘하기는 하지만 확실한 무기가 없다는 점은 선수층이 두터운 KT와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문정현같은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 유망주를 키우는 방법 중에 하나는 많은 롤을 주며 북치고 장구치게 해주는 것이다. 각 포지션 별로 좋은 선수가 많은 KT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돌격대장 스타일의 1번으로 주목을 끌었던 박무빈, 범용성이 좋은 3&D 유기상에 비해 주목을 덜 받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바로바로 팀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던 박무빈, 유기상과 달리 문정현은 사용법에 있어서 조금 까다로웠다. 특히 하필이면 슈팅력이 약점이었던지라 조합이라는 측면에서 더더욱 그랬다.


다음 시즌은 달라 보인다. 2년차에 접어든 문정현은 다방면에서 능력치를 끌어올리며 대학 시절의 존재감을 프로에서도 재현할 기세다. 13일 충북 제천체육관서 있었던 2024 DB손해보험 KBL 컵대회 in 제천 결승전에서의 활약은 업그레이드된 문정현을 기대하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다. 이날 KT는 원주 DB에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토종 주포 허훈이 부상으로 컨디션 난조에 시달린 부분이 컸다. 하지만 문정현은 펄펄 날았다. 34분 50초간 코트를 누비며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냈다. 20득점, 5리바운드, 2스틸로 기록도 좋았다. 무엇보다 약점으로 꼽히던 3점슛을 3개나 적중시켰다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2쿼터에만 13점을 몰아치며 주득점원 역할도 충분히 가능함을 입증했다.


이날 경기에서만 유달리 좋았던 것이 아니다. 대구 한국가스공사와의 4강전에서도 17득점, 10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을 작성하는 등 팀내 주축 역할을 제대로 해주고 있다. 지난 플레이오프에서 드러났다시피 KT는 이런저런 부분에서 특정 선수들에 대한 의존이 심했다. 해당 역할을 맡은 선수들이 부진하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다재다능한 문정현은 최고의 조커다. 공격세팅에서 허훈을 도와주고 수비에서는 문성곤의 부담을 덜어주는 플레이가 가능하다. 골밑싸움에서 하윤기를 지원해줄 수도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여러가지면에서 시너지효과가 발현될 것이 분명하다. 이번시즌 문정현의 활약이 주목되는 이유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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