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잉글랜드가 부진한 경기력에도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잉글랜드는 7일(한국시각) 독일 뒤셀도르프의 에스프리 아레나에서 열린 스위스와의 유로2024 8강전에서 120분을 1대1로 마친 후, 승부차기 끝에 5-3으로 승리했다. 잉글랜드는 지난 대회에 이어 두 대회 연속 준결승에 올랐다. 잉글랜드는 이번 대회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다. 스포츠 통계 전문사이트인 '옵타'는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이번 대회 시뮬레이션을 했는데, 잉글랜드가 19.9%의 확률로 우승 가능성 1위를 차지했다. 잉글랜드의 뒤를 이어서는 프랑스(19.1%), 개최국 독일(12.4%) 순이었다. 각종 베팅 사이트에서도 잉글랜드는 우승 가능성 1위로 꼽히고 있다.

잉글랜드는 지금까지 유로 대회에 15번 참가해 단 한 차례 결승전에 진출할 정도로 이 대회 우승과 인연이 닿지 않았다. 최고 성적인 준우승도 직전 대회인 유로2020에서 거머쥐었다. 초호화 멤버로 꾸려진 잉글랜드는 이번 대회에서 첫 우승에 도전한다. 해리 케인과 주드 벨링엄, 필 포든, 부카요 사카, 데클란 라이스 등 이른바 프론트6로 불리는 선수들이 선봉에 나섰다.

하지만 8강까지 진출하고도 고구마 경기력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세르비아에 1대0 신승을 거둔데 이어, 덴마크와의 2차전에서 1대1 무승부, 3차전 슬로베니아전에서도 0대0 무승부에 그쳤다. 조 1위로 16강에 오른 잉글랜드의 다음 상대는 슬로바키아전. 잉글랜드는 전반 25분 선제골을 허용하며 끌려 다녔다. 후반 추가시간 벨링엄의 환상적인 바이시클킥으로 가까스로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간 잉글랜드는 연장전 케인의 역전골로 힘겹게 8강에 올랐다. 8강에서도 어려운 경기를 했지만, 기어코 승리하며 우승 도전을 이어가게 됐다. 잉글랜드는 튀르키예를 2대1로 꺾은 네덜란드와 결승 진출을 가린다.

잉글랜드는 3-4-2-1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측면 자원들의 연이은 부상으로 포백에서 스리백으로 전환했다. 케인이 최전방에 섰고, 벨링엄과 포든이 2선에 자리했다. 사카가 예상대로 왼쪽 윙백으로 나섰고, 오른쪽에는 키어런 트리피어가 자리했다. 중원은 라이스와 코비 마이누가 지켰다. 에즈리 콘사, 존 스톤스, 카일 워커가 스리백을 이뤘다. 조던 픽포드가 골키퍼 장갑을 꼈다.

스위스도 같은 포메이션으로 맞섰다. 브릴 엠블로가 원톱으로 포진했고, 루벤 바르가스와 파비안 리더가 공격형 미드필더로 섰다. 허리진에는 미셸 애비셔, 그라니트 자카, 레모 프로일러, 단 은도예가 포진했다. 히카르도 로드리게스, 마누엘 아칸지, 파비안 셰어가 스리백을 구성했다. 얀 좀머가 골문을 지켰다.

경기 초반에는 치열한 눈치 싸움이 펼쳐졌다. 양 팀 모두 조심스럽게 경기를 풀어갔다. 잉글랜드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전반 14분과 16분 라이스와 마이누가 강력한 슈팅을 날렸다. 수비를 맞고 나왔다. 스위스는 수비벽을 두텁게 한 후 역습으로 맞섰다. 잉글랜드는 경기를 주도했지만 결정적인 기회를 잡지는 못했다.

22분 트리피어가 올린 코너킥을 케인이 머리에 맞췄다. 골문을 벗어났다. 답답한 흐름이 이어졌다. 양 팀 수비는 강력했다. 잉글랜드는 사카와 마이누의 돌파로 기회를 엿봤지만, 좋은 슈팅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결국 전반은 0-0으로 마무리됐다.

후반 시작과 함께 스위스가 공격적으로 나섰다. 후반 6분 프로일러의 패스를 받은 엠볼로가 박스 안에서 위력적인 슈팅을 날렸다. 픽포드가 막아냈다. 12분에는 엠볼로가 헤더를 시도했다. 수비에 막혔다. 스위스가 변화를 줬다. 18분 바르가스와 리더를 빼고 실반 비드머와 스티븐 주버를 투입해 공격 속도를 높였다. 21분에는 애비셔가 슈팅을 날렸다.

결국 스위스가 선제골을 넣었다. 30분 은도이가 오른쪽에서 낮고 빠른 크로스를 시도했다. 엠볼로가 뛰어들며 마무리했다. 엠볼로의 대회 2호골이었다.

당황한 잉글랜드가 실점 후 3명의 선수를 바꿨다. 콘사, 트리피어, 마이누를 빼고 루크 쇼, 에베레치 에제, 콜 팔머를 넣었다. 포백으로 전환해, 공격적으로 동점골을 노리겠다는 승부수였다. 결국 결실을 맺었다. 35분 아스널 듀오가 빛났다. 라이스가 내준 패스를 사카가 날카로운 슈팅으로 연결했다. 이 슈팅은 그대로 스위스 골문으로 빨려들어갔다.

동점골로 기세를 올린 잉글랜드는 후반 막판 케인과 에제가 결승골을 노렸다. 하지만 득점으로 연결하지 못했다. 결국 경기는 연장으로 향했다.

연장에서도 잉글랜드가 주도권을 쥐었다. 연장 전반 5분 라이스의 강력한 중거리슈팅은 좀머 골키퍼의 선방에 걸렸다. 스위스도 반격했지만, 잉글랜드의 기세는 대단했다. 12분 벨링엄이 슈팅으로 역전을 노렸지만, 좀머에 걸렸다.

양 팀 모두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최전방을 바꿨다. 잉글랜드는 케인을 빼고 아이반 토니를 넣었다. 스위스도 엠볼로 대신 노장 제르단 샤키리를 넣었다. 잉글랜드는 포든 대신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를, 스위스는 애비셔와 프로일러를 제외하고 빈센트 시에로와 제키 암도우니를 투입했다. 하지만 결국 두 팀은 득점에 실패했고, 경기는 운명의 승부차기에서 결정됐다.

첫 키커에서 승부가 결정됐다. 잉글랜드는 팔머가 성공시킨 반면, 스위스의 아칸지는 실패했다. 이후 잉글랜드는 벨링엄, 사카, 토니가 실수 없이 득점에 성공했다. 스위스도 셰어, 샤키리, 암도우니가 계속해서 성공 릴레이를 이어갔다. 마지막 키커는 아놀드였다. 아놀드는 마지막 키커의 중압감을 이겨내고 성공시켜, 승리를 매조지했다.

잉글랜드는 점유율 51대49, 슈팅수 13대12, 유효슈팅수 3대3, 모든 면에서 팽팽한 승부를 펼쳤지만,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으며 4강 진출에 성공했다. 동점골을 넣은 사카는 경기 후 유럽축구연맹 기술위원들이 선정한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됐다. 사카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승부차기에 대한 부담감은 내가 안고 가야할 것이다. 한번 실패했지만, 나는 다시 한번 나를 그 자리에 두고 싶었다. 우리 가족처럼 긴장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침착함을 유지한채 승부차기를 찼다“고 웃었다.

승리를 이끈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경기 후 BBC를 통해 “나는 선수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함께한 최고의 플레이였다. 우리는 온더볼 상황에서 그들에게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스위스는 정말 좋은 팀이고, 압박하기 어렵다. 막기도 어렵고, 움직임도 좋다. 토너먼트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단지 경기를 잘하는 것 뿐만 아니라 다른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며 “우리는 경기를 잘했다. 우리는 오프더볼 움직임이 좋았고, 수비를 잘했다. 우리는 라인을 올리기 위해 변화를 줬다. 사카와 함께 전진이 유리해졌다. 어젯밤 스페인이 승리했던 방법을 찾아야 했고, 우리 선수들은 해냈다. 자랑스럽다“고 했다. 사우스게이트는 잉글랜드 대표팀을 이끌고 치른 100번째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무라트 야킨 스위스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아프다. 우리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많은 기회를 만들었다. 잉글랜드는 많은 기회를 만들지 못한 반면, 우리는 우리만의 기회를 만들었다. 우리는 집에 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자랑스러운 경기력을 보였다“고 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