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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포츠가 대부분 그렇듯 NBA 역시 스토리에 진심이다. ‘없는 스토리도 만들어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주 조그만 소재만 있어도 최대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려 노력한다. 이는 팬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리그 흥행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평가다. KBL을 비롯한 세계 각 리그가 배워야 될 부분이다.


스테판 커리는 명실상부한 NBA 최고 스타중 한명이다. 그런 커리보다 12살어린 띠동갑 동명이인 후배가 등장했다고 가정하면 어떻겠는가. 고향도 인근이고 본래 포지션, 플레이 스타일도 흡사하다. 무엇보다 원조 커리에 못지않은 포퍼먼스를 보여주며 ‘훗날 은퇴하게되면 2명의 커리중 누구의 커리어가 더 대단할까?’ 논쟁까지 불러일으킨다.


그 정도면 NBA에서도 가만있지않을 것이다. 더더더더 스토리에 양념을 치고 또 쳐서 스토리를 만들어 낼 것이다. KBL에 바로 이런 스토리 소재가 있다. 바로 큰(이)정현과 작은(이)정현의 존재다. 스포츠에 동명이인의 존재는 새삼스럽지도 않다. KBL에서도 그런 케이스는 얼마든지 있었다.


혼혈 파워포워드 이동준에 묻혀버린 슈터 이동준이 대표적이며 스타들과 동명이인이었던 또 다른 김동우, 강병현, 이승현, 이상민 등을 기억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먼저 활약했어도 동명이인 후배가 더 잘해버리면 묻히는 것은 순간이며, 유명한 선배와 이름이 같더라도 실력으로 보여주지 못하면 화제성은 단발에 그쳐버리기 일쑤다.


이정현은 다르다. 서울 삼성 이정현(37‧190.3cm)과 고양 소노 이정현(25‧187cm)이 현재 KBL에서 함께 활약중인데 둘다 한국농구사에 큰 족적을 남긴 혹은 남길 선수들이다. 이름 만큼이나 닮은 점도 많다. 비슷한 사이즈에 더해 출신학교(연세대), 띠(토끼띠), 고향권(호남)도 같으며 플레이 스타일까지 비슷하다.


본래 작정현은 주 포지션이 큰정현과 같은 슈팅가드다. 하지만 김승기 감독을 만나면서 공격형 포인트가드로 포지션을 바꾼 상태다. 때문에 정통 1번과는 거리가 먼 슈팅가드와 포인트가드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야전사령관으로 활약중이다. 큰정현 또한 슈팅가드치고 시야, 리딩, 패싱게임이 무척 좋은 선수로 평가받아왔다.


큰정현은 다른 능력치에 비해 스피드는 특별하지 않았다. 대신 포지션 대비 좋은 힘과 한수 앞서 상대의 플레이를 읽는 센스로 이를 상쇄했다. 작정현도 비슷하다. 느리지는 않지만 스피드가 장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부분에서의 장점이 워낙 좋아서 크게 두드러지지않는다.


작정현은 지난 시즌을 기점으로 KBL 최고선수 중 한명으로 우뚝섰다. 평균 22.8득점, 6.6어시스트, 3.4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소노의 에이스 역할을 제대로 해줬다. 팀 성적만 받쳐주었다면 정규시즌 MVP에 등극했을 가능성도 높았다. 자신과 비슷하거나 작은 선수는 포스트업으로, 큰 선수는 페이스업이나 외곽슛으로 제압해버리는 등 공격력에 있어서만큼은 흠잡을데가 없다는 평가다.


세세한 부분까지 들어가면 서로간 차이가 있겠지만 한창때 큰정현도 그랬다. 내외곽을 오가며 전천후로 득점을 올렸고 슛감이 좋지않은 날은 번뜩이는 패싱센스나 리딩능력을 앞세워 팀에 공헌했다. 챔피언결정전 우승 2회에 정규시즌 MVP도 수상한바 있으며 KCC시절에 이어 삼성에서도 주장을 맡은바 있는 등 특유의 리더십을 인정받고 있다.


물론 12살의 나이 차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둘의 신체 나이는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큰정현은 전성기에서 내려오고있는 상황이며 작정현은 본격적으로 전성기에 돌입했다. 큰정현이 한시대를 풍미한 레전드로 KBL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면 이제는 작정현 차례다. 하지만 그렇다고 큰정현이 ‘지는 해’는 아니다. NBA 르브론 제임스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최전성기에서 내려왔을 뿐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삼성 김효범 감독은 “(이)정현이는 팀의 기둥같은 선수다. 코트 안에서는 노련한 베테랑이자 클러치 플레이어, 코트 밖에서는 후배들이 믿고 따르는 듬직한 고참이다. 이런 선수가 있다면 감독은 정말 편하다. 워낙 자기 관리를 잘하는 선수인만큼 걱정이 안된다. 다음 시즌에 삼성의 질주를 이끌 키플레이어 중 한명이다”는 말로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올시즌 엄청난 폭발력을 보인 작정현은 부상 등 변수만 없다면 다음 시즌에도 최고의 선수중 한명이다. 나이를 감안했을 때 전성시대가 찾아왔다고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큰정현 또한 꺾이지 않았다. 노련미와 리더십만큼은 아직 작정현이 따라오기 어렵다. 동명이인 두선수의 다음 시즌이 기대되는 이유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그림_김종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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