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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대식 기자]해리 케인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무관 DNA를 또 증명해버렸기 때문이다.

잉글랜드는 15일 오전 4시(한국시간) 독일 베를린의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에서 열린 유로 2024 결승전에서 스페인에 1대2로 무릎을 꿇었다. 잉글랜드는 역사상 첫 유로 트로피를 이번에도 손에 잡지 못했다.

이번 결승전에서 케인이 지독했던 무관 DNA를 끊어낼 수 있을지도 주목을 받았다. 케인은 이번 겨익를 앞두고 “커리어 동안 받았던 득점왕 트로피와 유로 우승컵과 바꿀 수 있겠냐고 묻는 것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다. 난 내 경력에서 해왔던 모든 업적과 트로피를 바꿀 수 있다. 내가 트로피를 따지 못했다는 건 비밀이 아니다“며 유로 우승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이번에야 말로 우승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했던 케인이다. 그는 “나에겐 잉글랜드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우승컵을 가져오기 위한 기회가 있다. 내가 잉글랜드인이라는 게 자랑스럽다. 내 경력에서 이룬 모든 것과 바꾸더라도 내일 밤 우승해서 특별한 밤이 됐으면 한다“며 우승에 도달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하지만 10년 넘도록 이어진 무관 DNA는 생명줄이 또 연장됐다. 케인은 결승전에서 아무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일찍 물러났다.

이번 경기에서도 케인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지 못했다. 케인은 선발 출장했지만 스페인 수비에 꽁꽁 묵여 별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후반 16분 교체되기 전까지 케인은 단 하나의 슈팅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다른 동료에게 기회를 만들어준 것도 아니었다. 결국 케인은 벤치에 남아 팀의 패배만을 지켜봤다.

이제 케인은 전무후무할 역사를 쓴 선수가 되기도 했다. 2015~2016시즌, 2016~2017시즌, 2020~2021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 2018 국제축구연맹(UEFA) 러시아 월드컵 득점왕, 2023~2024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UCL) 득점왕, 2023~2024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득점왕에 이어 케인은 이번 유로에서도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유럽 최고의 골잡이한테 주어지는 유러피언 골든슈까지 수상한 케인이었다. 그런데 케인은 분데스리가, UCL, 유로라는 굵직한 3개 대회에서 모두 득점왕이고도 우승에 실패했다.

그런데 무관이다. 저렇게 다양한 대회에서 득점왕에 오르고도 케인은 우승에 도달하지 못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끔찍할 정도다.

케인의 무관 DNA는 자신의 손으로 끊어내는 방법밖에 없다. 케인은 매번 결승전만 되면 슈퍼스타가 아니었다. 2014~2015시즌과 2020~2021시즌 카라바오컵 결승전을 포함해 2018~2019시즌 UCL 결승에서도, 유로 2020 결승에서도, 그리고 유로 2024 결승에서도 케인은 팀을 우승으로 이끌지 못했다. 심지어 득점도 못했다.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골잡이답지 못한 치명적인 약점이다.

이번에도 들러리로 전락한 케인은 시상대 위에서 처참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선수들을 위로해주기도 했지만 지금 이 순간 케인은 가장 위로받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케인은 정신적으로 무너졌다. 케인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팀에게도, 개인적으로도 또 다른 힘든 순간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토너먼트다. 우리는 최고점, 우리 경력의 정점에 너무 가까워졌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트로피를 얻을 방법을 찾지 못했고 그것은 오랫동안 상처로 남을 것이다“며 정신적으로 많이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이어 “지금 우리 기분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힘든 경기였다. 막판에 실점하는 건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기회를 놓쳤다. 이런 결승전은 우리에게 쉽게 오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 하지만 또 그렇게 하지 못했다. 너무 고통스럽고, 아프다“고 덧붙였다.

BBC는 추가적으로 '케인은 유로 2번째 결승전에서 패배하는 게 어려운 패배이며 고통스러워했다'고 덧붙였다.

케인은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거취를 묻는 질문에도 “우리는 감독을 사랑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내릴 결정이다. 또한 그의 거취에 대해 말할 때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며 원론적인 대답만을 내놓았다.

당분간 케인은 휴가를 통해 준우승의 아픔을 털어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상처는 케인의 말대로 오랫동안 남아있을 수 있다. 소속팀인 바이에른 뮌헨은 언제나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팀이다. 리그와 컵대회에서 우승 기회도 적지 않고, 시즌이 매년 진행된다.

하지만 국가대표팀에서의 우승 기회는 다르다. 아직 유럽축구연맹(UEFA) 네이션스리그의 중요성이 크지 않은 가운데, 선수들이 원하는 트로피는 월드컵와 대륙컵이다. 1993년생인 케인에게 남은 메이저 대회도 많지 않아 보인다.

월드컵은 다음 2026 북중미 월드컵이 케인한테 마지막 대회일 수 있다. 2030년 월드컵까지 케인이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선수로 뛸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유로 대회는 이번이 케인한테 마지막일 수 있다.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진행되는 유로 2028에 케인이 출전한다면 나이가 30대 중반이다. 케인이 그때도 현역일 가능성은 매우 높겠지만 지금과 같은 실력을 보여주지는 못할 것이다. 잉글랜드 선수단의 재능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걸 보면 케인이 잉글랜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만약에 다음 월드컵에서도 잉글랜드가 우승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케인은 잉글랜드 역사상 최다골 기록만 가졌을 뿐, 잉글랜드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 트로피를 맛보지 못한 채로 그라운드를 떠날 수도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커리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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