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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ABS(자동볼판정 시스템)의 판정이 주심보다 우선한다. 심판이 판정을 '번복'한게 아니라, 규정에 따른 것이다.“

현장 심판의 권한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올해 프로야구에서 주심보다 ABS, 그리고 비디오판독실의 판정이 우위에 있다. 야구계의 의견은 찬반이 갈린다.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인간' 심판 아닌 기계가 내린다는 사실이 처음 고지됐을 때는 심판들도 두손 들어 찬성했다. 매년 거듭된 볼판정 논란으로 인한 현장의 피로도가 적지 않았다. 심판들은 스포츠조선의 문의에 “볼판정 말고도 야구 심판이 할일은 많다. 경기 진행을 보다 매끄럽고 빠르게 하기 위해서라도 ABS(당시엔 흔히 로봇심판)의 도입을 환영한다“고 답하곤 했다.

ABS가 본격 도입된 올시즌도 벌써 4개월이 지났다. 전반적인 평가는 호평이다. 무엇보다 심판-선수-감독간의 불필요한 감정 싸움을 볼 일이 사라졌다. 감정을 드러내는 선수, 사령탑도 간혹 있지만,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프로야구의 ABS와 비디오판독은 프로축구의 VAR(비디오 보조심판)과는 결이 다르다. 축구는 현장의 권한이 크다. VAR 운영진이 확인을 요청할 수는 있으나, 확인 여부는 주심의 권한이다. 반면 프로야구는 전적으로 '기계', 그리고 '화면'에게 권한이 있다.

지난 24일 수원에서 열린 KT 위즈-SSG 랜더스전에서 벌어진 실랑이도 그랬다.

두 팀이 1-1로 맞선 6회초, 무사 1루에서 SSG 최정의 타석에서 ABS에 거듭 오류가 생겼다. 2구부터 5구까지의 볼판정이 주심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다만 3루심의 수신기는 정상이었다. 주심이 3루심의 수신호를 주시하며 스트라이크-볼을 알리는 보기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최정이 볼넷으로 출루한 뒤 다음 타자 에레디아의 1구에 또 오류가 났다. 수신 오류가 거듭되면, 두 심판들에겐 ABS 장비를 다시 체크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장비 체크 후 2구째에 또 오류가 났다. 이제 '심판 자체 판정'을 해야할 타이밍이다.

문동균 주심은 마이크를 잡았다. “ABS가 작동되지 않아 자체 판정을 합니다. 에레디아의 2구는 스트라이크“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숭용 SSG 감독이 반발했다. 더그아웃의 태블릿 PC에 투구 궤적이 찍혔던 것. 그 결과는 S존을 살짝 벗어난 '볼'이었다.

심이 고민하자 이번엔 이강철 KT 감독이 '이미 선언된 볼(스트라이크) 판정을 번복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펄쩍 뛰었다. 아웃-세이프, 페어-파울, 헛스윙-파울, 몸에맞는볼-파울 등이 간혹 번복되지만, 스트라이크-볼 판정이 바뀌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 드문 경우가 일어났다. 심판이 ABS의 판정에 따라 2구를 스트라이크에서 볼로 정정했다.

그리고 이날 심판의 자체판정은 에레디아의 3구째, 몸에맞는볼 단 1개였다. 이후부턴 ABS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날 상황에 대해 KBO 측은 '심판의 번복 판단이 정확했다'고 설명했다. 송신이나 수신이 늦어질 경우 심판이 자신의 기기를 점검할 수 있고, 그 사이에라도 투구 추적이 이뤄지면 주심의 자체 판정 대신 ABS 판독 결과에 따르는 게 맞다는 것.

이어 “원칙적으로는 SSG에서 항의하기 전에 ABS의 추적을 확인한 ABS 운영직원이 주심에게 뒤늦게라도 콜이 이뤄졌음을 전달했어야한다“면서 현장의 운영 미숙을 인정한 뒤 “규정상 '투수가 다음 공을 던지기 전', 이닝 종료시 '20초 전'에 항의가 이뤄지면 ABS의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따르도록 돼있다. 주심의 (번복)선택은 옳았다, 혼란 최소화를 위한 규정“이라고 설명했다.

보기에 따라 심판보다 ABS 운영직원의 권한이 더 큰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야구계 일각에서 올시즌 야구계 판정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제기되는 이유다. 정작 현장(주심)에는 선택권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한쪽 감독이 판독을 신청하면, 그 다음부터 해당 상황에 대한 판정 권한은 완전히 KBO 판독실로 넘어간다. 주심은 판독실의 결론을 전달할 뿐, 이를 참고삼아 현장에서 다르게 판단할 수 없다.

가령 '아웃-세이프를 두고 판독을 요청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주루방해 또는 수비방해 같은 부가적인 상황도 있다. 이에 대해 심판이 판단할 여지가 있어야한다'는 목소리다. 지금은 감독들의 항의에 심판진이 “규정상 그렇다(판독실에서 판단한다)“고 해명하는 상황.

한편으론 주심은 현장에 있고, 매경기 이름과 얼굴도 공개된다. 반면 판독실은 그렇지 않다.

현재는 매번 비디오판독 상황에 대해 근거로 삼은 영상,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 정도만 공개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매번의 판독 상황에 대해 판독실의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판단을 내렸는지 고지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주심이나 현장의 판단보다 기계가 우선하는 것. 어색하지만, 현재 야구뿐 아니라 프로스포츠가 나아가는 방향이다. 다만 아직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보완 여부에 대해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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