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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성원 기자, 파리=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그의 길은 늘 그랬다. 3년 전 그는 세계 랭킹 1위였다. 하지만 올림픽 무대 개인전 금메달은 다른 나라 이야기였다.

아시안게임도 '재수'였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결승전에서 '선배' 구본길에 14대15로 패했다. 지난해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그 한을 풀었다.

운명처럼 같은 무대에서 구본길을 다시 만났다. 4연패에 도전하던 구본길에 완승을 거두며, 아시아 정상에 섰다.

2021년 열린 2020 도쿄올림픽에선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컨디션 조절 실패, 경기 중 발목 부상 등 불운한 변수 속 금메달에 도전했다. 하지만 산드로 바자제(조지아)를 상대로 석연찮은 판정으로 1점을 잃으며 13대15로 분패, 8강에서 탈락했다.

반면 단체전에선 '에이스'답게 마지막 점수를 책임지며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을 이끌었다. 그의 맹활약 속 2012년 런던 대회에 이어 단체전 2연패(2016년 리우 대회는 종목 로테이션으로 미개최)에 성공했다.

이는 2014년 파리올림픽을 향한 서곡이었다. '꽃미남 펜서' 오상욱이 마침내 새 역사를 썼다. 세계 랭킹 4위 오상욱은 28일(한국시각)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년 파리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튀니지의 파레스 페르자니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펜싱이 개인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2000년 시드니 대회 남자 플뢰레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김영호, 2012년 런던 대회 여자 사브르에서 깜짝 금메달을 딴 김지연, 2016년 리우 대회 남자 에페서 '할 수 있어'의 감동을 준 박상영에 이어 네번째다.

올림픽 여정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손목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그는 5월 안방인 서울 올림픽공원 SK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국제그랑프리대회에 나섰지만 8강에서 필리프 돌레지비치(미국·당시 랭킹 78위)에게 12대15로 져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월드컵에서는 개인전 16강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오상욱은 포기하지 않았다. 연이은 실패가 자극제가 됐다. 지난달 반전이 시작됐다.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개인, 단체전 모두 우승하며 부활했다.

오상욱은 대전 매봉중 1학년이던 2009년 친형 오상민을 따라 펜싱을 시작했다. 공부와 펜싱을 병행하던 그는 중2 때 1년 선배들을 모두 제압하는 등 소질을 보이자 중3 때부터 전문 선수로 나섰다.

중1 때 1m60 초반이었던 키도 졸업할 때쯤 1m92까지 자랐다. 장신에다 팔다리가 길어 서양 선수들 못지않은 체격을 갖춘 데다 스피드와 순발력에서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아온 오상욱은 나서는 국제 대회마다 굵직한 결과를 내며, 한국 펜싱의 대들보로 우뚝 섰다.

올해 만 27세지만, 국가대표 경력이 벌써 10년 가까이 된다. 2014년 '한국 사브르 최초의 고교생 국대'가 된 오상욱은 일찌감치 기대주로 주목을 받았고, 기대에 딱 부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국제대회 데뷔전인 2015년 2월 이탈리아 파도바 월드컵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성장을 거듭하더니 2019년 전성기를 맞이하며 세계랭킹 1위까지 올랐다. 2019년 두 차례 그랑프리 우승에 이어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 금메달까지 휩쓸며 존재감을 떨쳤다.

오상욱은 이번 금메달로 그랜드슬래머가 됐다. 2019년 아시아선수권, 2019년 세계선수권, 2023년 항저우아시안게임 우승을 차지한 오상욱은 마지막 퍼즐 올림픽 금메달까지 거머쥐며, 개인전 그랜드슬램의 위엄을 달성했다. 한국 선수가 개인전에서 그랜드슬램에 오른 것은 오상욱이 처음이다.

믹스트존에서 만난 오상욱은 “엄청 기쁘다. 쉬고 싶은 마음이 크긴 한데, 단체전 금메달까지 따고 편히 쉬겠다“며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 첫 금메달인지 사실 몰랐다. 끝나고 나서 주변에서 이야기해주더라. 첫 금메달에 대한 의미도 있고, 그랜드슬램을 했다는 의미도 있다. 이번 메달이 큰 영광을 안겨준 것 같다“고 했다.

오상욱이 꼽은 고비는 8강전이었다. 당초 올림픽 3연패를 한 헝가리의 아론 실라지를 예상했지만, 그를 꺾은 캐나다의 파레스 아르파가 올라왔다. 오상욱은 “실라지와 겨뤄보고 싶었다. 아르파가 올라올거라 생각도 못했다. 데이터가 하나도 없었다. 힘들고 안좋은 생각이 들었는데, 코치샘이 '너를 이길 사람이 없다. 네 플레이만 하면 된다'고 좋은 이야기를 해주셨다“고 했다.

결승전에서 초반 상대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였지만, 단 1점을 남겨두고 상대에게 거센 추격을 허용했다. 오상욱은 “오히려 결승 상대가 더 까다로운 선수였다. 상대전적도 밀렸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들어 올 것이다는 빨리 판단했다“며 “상대가 쫓아오는데 진짜 온몸에 땀이 엄청났다. 그만큼 긴장도 됐고, 설마 여기서 잡히겠어라는 생각도 들더라. 코치샘의 말이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오상욱은 금메달을 꿈꿨던 도쿄 대회 이후 한단계 성장했다. 스타일도 바꿨다. 그는 “옛날에는 무승부 판정이 많았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누군가가 득점을 해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막 달려들기 보다는 조금 더 기다리는 펜싱을 할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슬럼프도 이겨냈다. 그는 “결국 마음가짐의 문제였다. 부상을 당하고 안되겠지 했는데, 그래서 정진하지 못했다. 그냥 몸을 최대한 굴리면서 훈련했는데 이게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는 도쿄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했던 '어펜져스' 멤버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오상욱은 “도쿄 대회 이후 가장 기억나는 순간은 김준호와 김정환 선수가 은퇴할때다. 형들이랑 함께하면서 컸는데, 나가니까 큰 변화가 있었다“며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금메달을 땄을 것이다. 그게 형들 덕분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도쿄 멤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오상욱은 이제 올림픽 2관왕을 정조준한다. 단체전 3연패도 노린다. 오상욱은 “개인전은 그냥 홀로서기를 잘한거라 조금 더 맛없다고 해야 하나, 단체전은 뭔가 같이 이겨내고 메꿔주는 맛이 있어서 더 좋다“며 “결과는 정해져 있다고 코치샘들이 이야기 하신다. 그냥 열심히만 하겠다“고 웃었다.

오상욱은 31일 펼쳐지는 단체전에서 또 한번의 역사를 노린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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