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뉴스
[24-08-05 18:53:00]
[파리=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셔틀콕 여왕' 안세영(22·삼성생명)이 올림픽 정상에 섰다.
'세계랭킹 1위' 안세영은 5일(한국시각) 프랑스 파리 포르트드라샤펠 경기장에서 열린 2024년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중국의 허빙자오(세계 9위)에 2대0 승리를 거뒀다. 지난 도쿄 대회서 당시 배드민턴 최연소 대표로 나서 8강에서 탈락했던 안세영은 이날 승리로 생애 첫 올림픽 메달을, 금메달로 장식했다. 1996년 애틀랜타 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방수현 이후 28년만의 올림픽 여자단식 금메달이었다.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까지 정북한 안세영은 이번 올림픽 금메달로 명실상부 '여제'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한국 배드민턴은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안세영은 한국 배드민턴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2012년 런던 대회부터 2021년 도쿄 대회까지 '올림픽 3회 연속 노골드'에 그친 한국 배드민턴은 이번 대회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노렸다. 최대 금메달 3개에 도전했다. 하지만 아쉽게 혼합복식에서 은메달 1개만을 수확했다. 남자복식은 아쉽게 4위에 머물렀고, 여자복식은 모두 8강에서 여정을 멈췄다. 자칫 금메달 없이 대회를 마칠 수도 있었다. 그만큼 안세영의 어깨가 무거웠다.
안세영은 현재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여자단식 1위다. 한국 선수로는 방수현 이후 27년만에 등장한 세계 톱랭커다. 안세영은 지난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차원이 다른 경기력으로 여자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을 거머쥐었다. 훈장도 있었다. 항저우아시안게임 결승서 당한 오른 무릎 부상으로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렸다. 재활에 집중한 안세영은 다행히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최근 펼쳐진 싱가포르오픈과 인도네시아오픈에서 각각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하며 올림픽 금메달 기대감을 높였다.
첫 경기는 다소 고전했다. 28일 세계 74위 코비야나 날반토바(불가리아)에 2대0 승리를 거뒀다. 내용은 썩 좋지 않았다. 7주 전 인도네시아오픈 결승전을 끝으로 경기를 치르지 못한 안세영은 실전 감각을 찾는데 애를 먹는 모습이었다. 잦은 실수로 점수차를 크게 벌리지 못했다. 다행히 2게임 들어서는 영점을 잡으며 본래의 기량을 과시했다. 스트로크의 예리함을 회복하며 대승을 거뒀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다소 불안한 모습이었다.
다행히 두번째 경기부터 기량을 찾았다. 프랑스의 취 셰페이에게 2대0(21-5 21-7) 완승을 거뒀다. 첫 경기에서 아쉬움을 보였던 인, 아웃 판단도 정확했고, 특유의 체력전을 바탕으로 한 집요한 공격도 좋았다. 안세영은 이날 승리로 조 1위를 확정하며 8강행을 확정했다. 이번 대회 여자 단식은 총 39명의 선수들이 출전, 각조 3명씩 13개조로 나뉘어 펼쳐진다. 각조 1위가 16강에 진출한다. 1번 시드를 받은 안세영은 16강전을 치르지 않고, 곧바로 8강 토너먼트에 오르는 혜택 속 일찌감치 8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8강 상대는 일본의 야마구치 아카네였다. 야마구치는 안세영이 세계랭킹 1위에 오르기 전까지 정상을 지켰던 선수다. 지난해 발부상으로 기량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안세영 입장에서는 까다로운 상대였다. 안세영은 대회 전 고비를 8강전으로 꼽았다. 1세트를 내주며 우려는 현실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안세영은 강했다. 2세트부터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치며 분위기를 바꿨다. 야마구치는 안세영의 플레이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체력에서 앞선 안세영은 2대1 역전승을 거뒀다. 신인 시절 파리에서 야마구치를 잡았던 안세영은 파리올림픽 중요 길목에서 또 다시 승리했다.
4강전을 앞두고 희소식이 전해졌다. 금메달의 가장 큰 경쟁자로 꼽혔던 '세계 2위' 천위페이가 4강 진출에 실패했다. 같은 중국의 허빙자오에 패했다. 금메달 경쟁자들이 줄줄이 탈락했다. 세계 3위 타이쯔잉(대만)이 예선 탈락한데 이어 천위페이 마저 4강행에 실패하며, 안세영의 결승 상대로 예정된 선수들이 모두 일찌감치 낙마했다. 안세영은 압도적인 기량에 대진운까지 따랐다.
4강 상대는 툰중. 안세영이 자신 있는 상대였다. 안세영은 툰중을 만나 7번의 맞대결에서 모두 승리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 6월 싱가포르오픈 준결승에서도 2대0으로 승리한 바 있다. 1세트 안세영은 몸이 풀리지 않은 듯 연이은 실수를 범했다. 상대에 끌려다니며 세트를 내줬다. 2세트부터 안세영의 플레이가 나왔다. 8강전처럼 2세트부터 경기를 지배했다. 특유의 날카로운 플레이로 상대를 몰아붙였고, 상대는 체력이 고갈되며 전혀 반격하지 못했다. 떨어진 상대 집중력을 이용해 계속해서 스코어를 쌓은 안세영은 2, 3세트에서 완승을 거두며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결승 상대는 허빙자오였다. 또 다시 행운이 따랐다. '세계 4위' 카롤리나 마린이 불의의 부상으로 경기 중 기권했다. 1세트를 잡고 2세트에서도 앞서가던 마린은 갑작스러운 무릎 통증을 호소하며, 눈물을 흘렸다. 허빙자오가 어부지리로 결승에 올랐다. 허빙자오의 세계랭킹은 9위, 상대 전적에서도 8승5패로 우위에 있다. 물론 허빙자오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허빙자오는 최근 내리막을 탔지만, 2023년 10월에는 세계 5위까지 찍었다. 지난 4월 아시아선수권에서는 0대2로 패한 적도 있다.
결승에 나선 안세영은 초반 고전했던 이전 경기들과 달리, 치고 나갔다. 대등하게 점수를 올렸다. 8-6으로 리드를 잡기도 했다. 엎치락 뒤치락 하며 맞선 안세영은 절묘한 헤어핀을 성공시킨데 이어, 상대 범실을 유도하며 11점을 먼저 획득했다. 11-9. 리드를 잡은 안세영은 상대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고 계속 앞서나갔다. 종반 스코어를 벌렸다. 15-12 상황에서 이어진 긴 랠리, 안세영은 특유의 운영능력으로 상대 범실을 유도했다. 사실상 1세트 승부는 여기서 끝이었다. 안세영은 강력한 스매싱과 절묘한 대각선 공격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21-13으로 세트를 따냈다.
2세트도 안세영의 페이스였다. 2-2에서 멋진 네트플레이로 점수를 딴 안세영은 연속 득점으로 스코어를 벌렸다. 상대가 5-5까지 추격했지만, 멋진 네트플레이로 다시 달아났다. 안세영이 또 다시 11점 고지를 먼저 밟았다. 11-7. 허빙자오도 좋은 선수였다. 안세영의 회심의 스매싱을 절묘하게 받아 넘기고 기세를 올린 허빙자오는 11-11로 추격했다. 하지만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14-11에서는 상대 챌린지를 무력화시키는 득점을 올렸다. 17-12 스코어는 점점 벌어졌다. 안세영은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 점수를 성공시킨 후, 포효했다.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안세영은 대회 전 “올림픽 금메달은 마지막 퍼즐, 낭만 있게 끝내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각오대로 였다. 부상, 부담 등을 모두 넘어 이뤄낸 낭만적인 금메달, 한국 배드민턴은 안세영 시대다.
파리=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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