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뉴스
[24-08-03 08:26:00]
[파리=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하늘이 덜 감동한 것 같아요.“
한국 유도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최중량급 은메달이라는 새로운 역사에서 김민종(양평군청)은 만족하지 않았다. 김민종은 3일(한국시각) 프랑스 파리 샹드마르스 경기장에서 열린 2024년 파리올림픽 유도 남자 100㎏ 이상급 결승전에서 '프랑스 영웅' 테디 리네르에게 허리후리기로 한판패했다.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금메달을 놓쳤지만 김민종은 한국 유도 최중량급 선수로는 최초로 은메달을 땄다. 역대 올림픽 최중량급 메달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 1988년 서울 대회(이상 조용철), 2000년 시드니 대회(김선영)에서 나온 동메달뿐이었다.
김민종은 이번 대회 유도의 최고 믿을맨이었다. 김민종은 지난 5월 제대로 '사고'를 쳤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최중량급에서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딴 건 1985년 조용철 현 대한유도회장 이후 39년 만이었다. 김민종은 준결승에서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루카스 크르팔레크(체코)를 모로걸기 절반으로, 결승에선 도쿄 은메달리스트 조지아의 구람 투시슈빌리를 가로누르기 한판으로 꺾었다.
유도 남자 100㎏ 이상급은 서양 선수들의 전유물이라 불린다. 해당 체급은 몸무게에 제한이 없어서 체격과 힘이 좋은 서양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기에 유리하다. 한국 유도는 올림픽 역사상 남자 최중량급에서 금메달을 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도쿄올림픽 유도 종목에서 9개 금메달을 쓸어 담았던 일본도 남자 100㎏ 이상급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메달 획득조차 실패했다.
김민종은 이번 파리올림픽서 유쾌한 반란을 꿈꿨다. 김민종은 '유도 천재'였다. 어린시절부터 체격이 남달랐던 김민종은 초등학교 4학년때 부모님의 권유로 유도를 시작했다. 넘치는 에너지를 유도장에서 쏟으라는 뜻이었다. 놀면서 시작한 유도는 그의 인생이 됐다. 재능은 특별했다. 1년만에 전국대회에 나선 김민종은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우승을 싹쓸이 했다. 보성고 3학년 때인 2018년에는 태극마크도 달았다.
2019년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는 파란을 일으킨 김민종은 이 체급서 오랜 기간 1인자로 군림하던 '대선배' 김성민을 꺾고 도쿄올림픽 출전권까지 획득했다. 하지만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코로나19로 훈련장이 모두 문을 닫자 아버지를 도와 돼지고기를 나르는 일로 훈련을 대신하기도 했다. 김민종의 부모님은 마장동에서 대를 이어 정육점을 운영한다. 힘겹게 출전한 첫 올림픽은 아픔이었다. 16강에서 2016년 리우 대회 은메달리스트 하라사와 히사요시를 만나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패했다. 경기 후 분을 이겨내지 못하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도 했다.
김민종은 “바로 내일부터 훈련을 다시 시작하겠다“며 “파리에선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패배는 큰 자양분이 됐다. 김민종은 멘탈을 키우기 위해 명상을 하고, 스포츠 심리 상담까지 받았다. 기술은 더욱 향상시켰다. 그는 체급이 낮은 선수들과 주로 훈련하면서 스피드와 체력을 끌어올렸고, 다양한 발기술을 배우며 기술 유도를 완성했다. 체격적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기술에 초점을 맞췄고, 이를 위해 몸무게를 줄이는 파격적인 승부수를 띄웠다.
김민종은 파리로 떠나며 “하늘이 감동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힘들고 고된 훈련을 버텼다“며 “이제 하늘이 제게 뭔가를 선물해주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스스로도 만족할 정도로, 혹독한 훈련을 버티며 올림픽을 준비했다. 그는 결국 값진 은메달을 수확했다.
하지만 만족은 없었다. 김민종은 “금메달을 따지 못해 너무 아쉬운 마음뿐이다. 역사를 썼다고 하기에는 숙제가 많은 것 같다“며 “유도를 시작하면서 꿈이 올림픽 금메달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늘이 덜 감동한 것 같다“며 “이 정도로는 부모님만 감동하지, 하늘은 감동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리네르가 나에 대해 많은 걸 연구하고 나온 것 같다. 반면 나는 연구가 부족했다“며 “원래 그런 기술을 잘 쓰는 선수인데 방어하지 못했다. 내가 미숙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민종은 “그 선수의 장점은 배우고 싶다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게 대단한 선수와 맞붙은 것만으로도 이번 올림픽에서 많은 걸 배웠다고 생각한다“며 “결승에서 그 선수와 상대했다는 것만으로도 다음 대회를 준비할 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민종은 마지막으로 “이번 대회를 통해 하늘을 감동하게 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때는 확실하게 그렇게 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파리=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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