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뉴스
[24-11-01 00:54:55]
‘KBL 각팀에서 외국인선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이상이다’는 말이 있다. 다소 과하게 느껴지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외국인선수가 그만큼 전력에서 절대적이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어떤 외국인선수가 합류하느냐에 따라 하위권이었던 팀이 다음 시즌에는 몰라보게 달라지기도 한다.
해당 외국인선수의 기량 외에 그로 인한 국내 선수들의 플레이 상승 효과까지…, 많은 것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2인 동시 출전, 혼용 그리고 지금의 1인 출전제까지 시기별 제도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메인 외국인선수의 중요도가 토종 에이스 이상인 것 만은 분명하다. 감독들이 매시즌 외국인선수 때문에 울고 웃는 것도 그래서이다.
KBL에는 시기별, 상황별로 매니아 팬은 물론 라이트 팬들까지 두루 잘 알고있는 외국인선수가 존재했다. 제럴드 워커, 조니 맥도웰, 에릭 이버츠, 마르커스 힉스, 피트 마이클 등이 대표적이다. 오랜시간 리그에서 활약한 장수 외국인선수도 있지만 잠깐 뛰었음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간 외인도 눈에 띈다.
원년 시즌 최고 인기 외인 중 한명이었던 워커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테크니션 외인’, ‘단신 외인’하면 빠지지 않고 언급될 정도로 쉬이 잊혀지지 않고 있다. 오래 뛴것도 아니다. 원년 그리고 1998~99시즌 그렇게 두 시즌만 활약했고 팀을 챔피언결정전에 올려놓았다던가 등의 굵직한 공헌도도 없었다.
외려 그런 부분을 따진다면 조 잭슨, 키퍼 사익스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줘야 할 것이다. 워커와 비슷한 시기에 뛰었던 단신 외인 아도니스 조던 역시 기량만큼은 못지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유명도에서는 여전히 워커다. 여기에는 유달리 많은 시선이 쏟아졌던 원년 시즌 그리고 거기서도 가장 화려했던 테크닉을 선보였던 이유가 크다.
단순한 경기 지배력에서는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화려함만 따지고보면 여전히 역대급이다. '에어 워커'라는 닉네임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184cm 단신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탄력을 앞세워 속공 상황은 물론 세트오펜스에서도 수시로 덩크슛을 찍어댔다. 거기에 화려한 드리블과 노룩 패스, 리바운드 후 코스트 투 코스트 플레이를 너무도 손쉽게 해냈다. 스틸 1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손도 빨랐다. 키 작고 탄력좋은 외인을 연상할 때 워커가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이유다.
맥도웰은 여러 가지가 잘 맞아떨어진 케이스다.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대전, 전주에서 전성기를 보내면서 왕조의 주역으로 각광받았고 큰 덩치, 귀여운 캐릭터(?) 등 자신만의 개성이 확실했다. 당시 외국인선수하면 탄력을 앞세워 덩크슛을 펑펑 터트리는 유형을 연상하기 일쑤였지만 맥도웰은 달랐다.
신장(194cm)은 압도적이지 않았으나 육중한 체격과 거기서 뿜어져나오는 힘을 바탕으로 포스트 인근을 지배했다. 최고 인기스타 이상민의 파트너라는 점도 플러스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흡사 ‘KBL판 마동석’같은 존재였다. 지금은 좀 덜해졌지만 당시에는 둥글둥글한 체형의 사람들에게 ‘너 맥도웰 닮았다’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KBL 역대 백인 외인하면 지금도 이버츠가 언급된다. 상당수 백인 선수가 그랬듯 플레이가 화려하지도 인기가 엄청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묵묵하고 성실하게 제몫을 다하는 유형이었다. 당시 말썽꾸러기 외인이 태반인 상황에서 감독들이 매우 선호하는 선수였다. 회사원같은 외모에 기복없이 늘 평균 이상의 활약을 펼쳐주었던 모범생 스타일의 대표격이다.
지금은 하늘의 별이된 힉스 또한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높은 탄력을 앞세워 매경기 덩크슛 혹은 블록슛 하이라이트를 만들어낸 외인이다. 빠르게 코트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상대수비를 흔들어대는 모습은 흡사 한마리 흑표범같았다. 맥도웰류로 대표되던 파워 외인의 시대를 끝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힉스같은 스타일로도 성적이 나오자 더 이상 돌쇠형 외인에 집착하지 않게 된 것이다. 사실 기량 자체 만을 놓고 따진다면 역대로 볼 것도 없이 비슷한 시기에도 찰스 민랜드, 안드레 페리, 리온 트리밍햄 등 힉스 못지않은 선수들이 적지않게 존재했다. 트리밍햄같은 경우 맞대결에서 힉스를 유린하다시피 압도한 바 있다.
힉스는 김승현과 함께 약체 오리온스의 우승을 만들어낸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전 시즌 오리온스는 김병철, 전희철 등이 있었음에도 하위권을 면치못했는데 신인 김승현과 힉스가 가세하면서 챔피언결정전 우승 신화를 합작했다. 당시 김승현과 힉스 콤비는 이상민, 맥도웰의 뒤를 이어 큰 화제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잊혀지지않는 스토리로 남고 있다.
마이클은 크리스 윌리엄스, 크리스 랭, 자레드 설린저, 민랜드 등과 함께 역대 최고 외인 논쟁이 나올 때마다 빠지지않고 등장하는 선수다. 딱 한시즌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여준 임팩트가 워낙 컸다. 당시를 기억하는 팬들 사이에서는 ‘핏마’, ‘핏교주’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돌파 위주의 공격이 주옵션이었지만 KBL 기준에서는 알고도 막기 힘들었다. 3점라인 부근에서부터 돌파를 시작했는데 사이즈, 웨이트에 더해 압도적인 스피드까지 갖추고 있었던지라 2~3명이 붙어도 제어가 쉽지않았다. 그렇다고 막무가내 '묻지마 돌파' 스타일도 아니었다. 왼손잡이이면서도 골밑 마무리시 오른손을 잘 썼다.
좌우를 가리지않고 림어택을 들어갔으며 순간적으로 멈춰서서 쏘는 스텝백 점프슛도 위력적이었다. 실력만 놓고보면 팀을 파이널 우승으로 이끌어야 했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지나치게 나홀로 플레이로 일관했다는 부분이 컸다. 분명 국내 리그에서 감당하기 벅찬 사기유닛이기는 했으나 그가 날뛰는 사이 다른 동료들은 허수아비가 되기 일쑤였다.
그렇다면 현 KBL을 대표하는 외국인선수는 누구일까? 아마도 가장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외인은 자밀 워니(30‧199cm)일 것이다. 스타급 외국인선수가 드문 가운데 매시즌 뚜렷한 임팩트를 남기며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2015년 KBL 외국 선수 드래프트에 참여해 한 차례 낙방한 경험이 있는 그는 이후 G리그와 중국 리그에서 활약하다가 2019년에 KBL에 입성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서울 SK에서 뛰면서 구단과 리그를 대표하는 특급 외인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워니가 왜 리그 대표 외인인지는 커리어만 놓고봐도 이해가 된다. 불과 다섯 시즌만에 외국인선수 MVP 3회, 득점왕 2회, 챔피언결정전 우승 1회의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득점같은 경우 매시즌 상위권에서 경쟁중이다. 올시즌 역시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렇다고 득점 특화형 선수만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몸이 탄탄하고 힘이 좋은지라 매시즌 두자릿수 리바운드 및 1개 이상의 스틸, 블록슛도 책임져주고 있다. 패싱센스도 나날이 좋아지고있다는 평가다. 이제 30세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본인만 의지를 가지고 KBL에서 계속 뛴다면 장수 외인으로서 많은 기록을 깨트릴것이 확실시된다.
원년부터 농구를 봐온 팬들 사이에서는 ‘당시의 맥도웰같은 존재가 지금의 워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현 시점 리그에서 가장 공수밸런스가 좋고 견적이 뚜렷하게 나오는 선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전히 전성기를 달리고있는 워니가 올시즌도 최고 외인으로서의 이름값을 증명할지 주목해보자.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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