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뉴스
[24-08-02 07:05:00]
[파리=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위기였다. 승부를 결정짓는 3세트, 16-13 리드 상황에서 김원호(삼성생명)가 메디컬 타임을 불렸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극한까지 왔다. 결국 구토를 했다. 김원호는 “후반때 자꾸 헛구역질이 나오더라. 단순히 한번 나온거겠지 싶었는데, 매트에다 할 것 같아서 레프리를 불렀고 봉지에 구토를 하고 다시 경기를 했다“고 했다. 김원호가 정나은(화순군청)을 불렀다. 그는 “그때 아예 배터리가 끝난 상태였다. 나은이한테 '너한테 맡기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했다“고 했다. 정나은은 부담됐지만, 다시 라켓을 꼭 잡았다. 정나은은 “오빠가 나를 믿고 하겠다고 했다. 부담이었지만, 그 상황에서는 내가 해내는 수 밖에 없었다. 오빠를 더 잡아주고 경기를 했다“고 했다.
한명이 흔들리면, 한명이 잡아주는게 바로 호흡이고 케미다. 한국 선수들끼리 붙은 4강전, '환상의 짝꿍' 김원호-정나은이 웃었다.
세계랭킹 8위 김원호-정나은은 2일(한국시각) 프랑스 파리 포르트드라샤펠 경기장에서 열린 2024년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4강전에서 세계랭킹 2위 서승재(삼성생명)-채유정(인천국제공항)에 2대1(21-16 20-22 23-21)로 승리했다. 김원호-정나은은 결승에 오르며 은메달을 확보했다. 금메달에 도전한다. 한국 배드민턴이 올림픽 무대에서 결승에 오른 것은 2008년 베이징 대회 이후 처음이다. 서승재-채유정은 동메달결정전에 나선다.
김원호-정나은은 행운의 8강 진출권을 잡았다. 29일 세계 1위인 중국의 정쓰웨이-황야충에 0대2로 패했다. 조별 예선에서 1승2패에 머물며 8강행이 불투명했다. 파리올림픽 복식 경기는 16개 팀이 4개 조로 나눠 예선을 치르며 각 조 1, 2위가 8강에 진출한다. 하지만 이어진 경기에서 톰 지켈-델핀 델뤼(프랑스) 조가 리노브 리발디-피타 하닝티야스 멘타리(인도네시아) 조를 2대0으로 누르며 기사회생했다. 한국, 프랑스, 인도네시아가 모두 1승 2패를 기록했는데 게임 득실에서 -1(3득 4실)로 앞서 A조 2위로 8강 무대를 밟았다.
8강에서 말레이시아의 첸 탕지에-토 이웨이조에 2대0 승리를 거둔 김원호-정나은은 4강에서 서승재-채유정을 만났다. 벅찬 상대였다. 서승재-채유정은 조별 예선부터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하며 4강까지 왔다. 김원호-정나은은 앞서 서승재-채유정과 5번 맞붙어 한 판도 이기지 못했다. 김원호는 “올림픽 준결승에 한국 두 팀이 올라가서 너무 행복하다“면서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기 때문에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정나은도 “후회 없이 경기를 치러서 한국에 돌아가자는 말을 했었다“면서 “(금메달까지) 진짜 별로 안 남았으니까 열심히 한번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명승부였다. 무려 77분간 진행됐다. 1세트는 김원호-정나은이, 2세트는 서승재-채유정이 따냈다. 마지막 운명의 3세트. 팽팽한 승부가 이어졌다. 막판 변수가 생겼다. 김원호가 메디컬 타임을 요청했다. 구토를 했다. 포기는 없었다. 듀스 상황에서 끝내 승리하며 마침표를 찍었다.
경기 후 만난 김원호는 “이긴 느낌이 지금까지도 들지 않는다. 아직은 내가 이겼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정나은도 “실감이 안난다.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 우리가 예선부터 힘들게 올라왔는데 이렇게 결승까지 올라와서 진짜 믿기지 않는 결과 같다“고 했다.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상대였기에 더 짜릿한 승리였다. 김원호는 “상대가 우리보다 한수위기에, 더 파이팅하고, 적극적으로 뛰려고 했다. 패기있게 해서 부담을 줄 수 있었다. 나은이가 마지막까지 잘 이끌어준 덕분“이라고 했다. 정나은도 “누가 결승 갈지를 생각치 않았다. 예선 보다는 긴장이 덜 됐던 것 같다“고 했다.
김원호는 이번 승리로 병역 혜택을 받았다. 그는 “지난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이기는 상황에서 군대 생각하다고 잡힌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그 마음 티 안내려고 노력했다. 경기 중에는 생각 안했고,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한국 선수를 이기고 올라온 결승인만큼, 각오는 남달랐다. 그는 “예선전에는 조금 게임이 안 되는 경기를 했지만 결승전은 아마 다를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파리=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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