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12안타 6실점 승리투수 류현진.

류현진의 명성을 생각하면 초라한 타이틀이다. 올시즌 최다인 111개의 공을 던지며 5이닝을 겨우 채웠고, 안타 12개를 얻어맞으며 6실점(5자책점)을 기록했다. 그런데 승리를 따냈다. 타선 지원이 화끈했다는 의미다. 마냥 기뻐할 수 있었을까.

한화 이글스는 31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와의 경기에서 18대7 대승을 거두며 파죽의 5연승을 달렸다. 아직 5강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강력한 선전포고를 상위팀들에 했다.

투수전이 예상된 경기였다. 류현진과 KT 토종 에이스 고영표의 첫 맞대결. 하지만 3회 KT 황재균의 어처구니 없는 실책 속 한화가 대량 득점을 하며 경기 흐름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문제는 류현진도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는 점.

4회 '절친' 황재균에게 투런포를 허용하고, 5회에도 황재균에게 2타점 안타를 맞는 등 3실점 했다. 이미 1회 오재일에게 적시타를 내줬던 류현진이었다.

하지만 타자들이 벌어준 게 있었다. 한화 타선은 5회까지 7점을 냈다. 그러니 쉽게 뺄 수도 없었다. 아웃카운트 1개만 더 잡으면 승리 요건인 상황이 이어지는데, 실점은 계속 쌓였다. 하마터면 승리 요건이고 뭐고, 다 날아가고 교체될 뻔 했다.

'명장' 김경문 감독은 끝까지 류현진을 믿었다. 여기서 오버랩되는 장면. 최근 선두 KIA 타이거즈 이범호 감독은 팀에서 류현진과 같은 위상이라고 해도 무방한 '대투수' 양현종을 4회 2사 상황서 과감히 교체하는 결단을 내렸다. 양현종 역시 승리 요건을 갖출 수 있는 상황에서, 좌타자 김영웅 상대 교체를 당하자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이 감독이 양현종에게 다가가 '백허그'를 하며 기분을 풀어주는 장면으로 화제가 됐었다. 이 감독은 “오직 팀 승리만을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했었다.

사실 이날 5회 류현진의 상황도 교체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5회 이미 투구수 100개가 넘었다. 12안타는 KBO리그 한 경기 최다 안타 불명예 기록이었다. 종전 기록은 11개였다. 경기 초반부터 KT 타자들이 류현진의 공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완전히 받혀놓고 때렸다. 이날 유독 존 외곽 제구가 살짝 빗나가며 애를 먹었는데,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가는 공에 KT 타자들 방망이가 무섭게 따라나왔다. 구위로 압도하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1위를 지켜야 하는 KIA의 사례처럼, 한화도 이날 승리가 간절히 필요했다. 얼마만에 찾아온 5연승 기회인가. 류현진의 승리를 챙겨주려다, 하마터면 경기가 날아갈 뻔 했다. 그래도 김 감독은 제자의 자존심을 우선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류현진도 6실점으로 어떻게든 막고, 승리요건을 갖춘 채 마운드를 내려왔다.

결과적으로는 해피엔딩이었다. 올시즌 유독 승운이 따르지 않던 류현진이 지난 6월18일 키움 히어로즈전 이후 6경기 만에 타선 지원으로 6승을 따냈고, 팀도 연승을 거뒀다. 하지만 경기수가 늘어나고, 계속되는 무더운 날씨에 류현진의 칼이 조금은 무뎌진 게 아닌가 걱정이 되는 시점이다. 5이닝 12안타 불명예 기록, 6승보다 류현진이 더 신경쓰는 밤이 됐을지도 모른다.

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