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뉴스
[24-08-05 18:55:00]
[파리=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올림픽의 부담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셔틀콕 여왕' 안세영(22·삼성생명)은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 한국 배드민턴이, 한국 선수단이 기대하는 가장 강력한 '믿을맨'이었다. 애초에 대한체육회가 보수적으로 잡은 목표, 금메달 5개에 안세영도 포함돼 있었다. 금메달이 아니면 '실패'라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랭킹 1위' 안세영은 방수현 이후 27년 만에 등장한 세계 톱랭커다. 안세영은 작년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차원이 다른 경기력으로 여자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을 거머쥐었다.
모두가 외치는 금메달, 그 무게감에 안세영은 짓눌린듯 했다. 대회 전 “올림픽 메달이 그랜드슬램의 마지막 퍼즐이다. 내 퍼즐을 완벽하게 채울 수 있도록 하겠다. 금메달을 위해 파리올림픽에 모든 것을 받칠 생각“이라고 당당히 말했던 안세영은 막상 올림픽이 시작하자, 움추려 들었다. 심리적으로 불안해 보였다. 첫 경기부터 그랬다. 지난달 28일(이하 한국시각) 코비야나 날반토바(불가리아)와의 조별 예선 1차전(2대0 승) 경기 후 인터뷰에서 눈가가 촉촉해졌다. 안세영은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다. 되게 내려앉는 기분“이라고 했다.
1일 두번째 경기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떤 느낌인지 모르겠는데 부담감이 크다. 몸은 좋은데, 부담감을 느끼다보니 몸이 굳더라. 올림픽이라 그런 것 같다. 많은 경험을 했다고 했는데 막상 들어오니까 지면 끝이라는 생각을 하다보니 숨도 막히더라“고 했다. 툭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방법은 없었다. 결국 스스로 이겨내야 했다. 그는 “아쉽지만 같이 오고 싶어했던 트레이너 선생님도 오지 못했고, 외국인 코치는 감정을 공유하기에는 한계가 있더라. 그래서 좀 힘들다“며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실수하면 어떡하지 걱정부터 하니까 고민이다.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즐기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 꿈꾸던 무대에 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다행히 안세영은 강했다. 고비였던 '전 세계 1위' 야마구치 아카네와의 8강전에서 멋진 역전승을 거뒀다. 1세트를 먼저 뺏겼지만, 자신만의 플레이를 유지하며 거둬낸 승리라 의미가 있었다. 그는 “긴장이나 부정적인 감정은 들지 않았다. 그냥 난 할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계속 임했다“고 했다. 4강에서도 인도네시아의 그레고리아 마리스카 툰중(세계 8위)에 2대1 역전승에 성공했다. 안세영은 “먼저 세트를 준다는게 엄청 부담스럽다. 하지만 정신은 더 번쩍 들게 하니까 그게 오히려 더 나를 계속 몰아붙이게 되는 힘인 것 같다. 1점씩 쌓으면 언젠가 따라잡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웃었다.
안세영이 그렇게 부담감을 이겨내자 행운도 따라왔다. 세계랭킹 2~4위가 줄줄이 탈락했다. '세계 2위' 천위페이가 4강 진출에 실패했고, '세계 3위' 타이쯔잉(대만)은 예선에서 탈락했다. '세계 4위' 카롤리나 마린(스페인)마저 4강에서 불의의 부상으로 기권했다. 물론 안세영은 대진에 개의치 않았다. 안세영은 “늘 말했듯 모든 선수들이 라이벌이라 생각했다. 천위페이 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다 잘하고, 올림픽은 변수가 너무도 많다. 누가 올라오든 내걸 해야 이길 수 있기에 잘 준비하겠다“고 했다.
안세영은 결국 마지막에 웃었다. 안세영은 5일 허빙자오(중국)와의 결승전에서 2대0 승리를 거두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6년 애틀랜타 대회 방수현 이후 28년만의 여자단식 금메달에 성공했다.
안세영은 대회 전 “더운 날씨에 힘들게 준비한 만큼 낭만 있게 끝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낭만이라는 단어를 구체적으로 묻는 말에 “스포츠에서 많이 사용하지 않는 용어지만, 부상에 힘들어 하는 나를 위해 트레이너 선생님께서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운동을 잘 끝냈다는 생각이 들면 그 하루를 잘 보낸 것'이라는 조언을 주셨다. 그런 마음으로 부상을 이겨냈다. 만약 파리올림픽을 낭만 있게 끝낸다면 올해를 잘 보내게 될 것 같아서 낭만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라고 했다.
하루하루를 잘 보낸 안세영은, 그 힘으로 부담감을 넘었고 원하는대로 파리에서 낭만 있는 마무리를 했다.
파리=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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