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뉴스
[24-08-04 11:51:00]
[스포츠조선 한동훈 기자] 사격 결선에서 개최국 프랑스의 일방적인 응원을 극복한 양지인(21·한체대)의 인생 모토는 '대충 살자'다. 그 덕분인지 총알 하나 하나로 희비가 엇갈리는 슛오프에서 프랑스 선수를 심리적으로 압도했다. 양지인은 지난 3일(이하 한국시각) 프랑스 샤토루 슈팅센터에서 열린 '2024년 파리올림픽' 사격 여자 권총 25m 금메달을 획득했다. 50발을 쐈는데 프랑스 카밀 예드제예스키와 동점이어서 슛오프에 돌입했다. 마지막 5회 사격에서 양지인은 4발을 명중시킨 반면 예드제예키는 1발로 무너졌다.
양지인은 자신의 프로필에 성격의 장단점을 '대충 사는 것'이라고 적었다. 좌우명은 '어떻게든 되겠지,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다. 지난 일을 마음에 깊이 담아두지 않는 쿨한 성격이다. 스포츠에서는 종목을 막론하고 자신의 플레이에 '일희일비'하게 되면 결과를 그르치기 마련이다. 특히 째깍째깍 초단위로 쫓기는 사격은 내가 놓친 샷을 빨리 잊고 다음을 준비해야 유리하다. 양지인의 이런 돌부처와도 같은 무심한 마음가짐은 멘털스포츠에 최적이다. 양지인은 2022년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도 개인전 결선에서 기계 오류 탓에 점수가 모니터에 뜨지 않는 돌발상황을 맞이했다. 양지인은 “내가 바꿀 수 없는 상황이니까 '그래 뭐,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고 쐈다“고 회상했다. 흔들리지 않은 양지인은 결국 동메달을 획득했다.
물론 양지인도 올림픽서 외나무다리에 남게 되자 부담감이 조여왔다. 잘 다뤘을 뿐이다. 양지인은 “정말 긴장됐지만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훈련할 때 최대한 실전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슛오프도 대비했다“며 연습의 성과가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예드제예스키는 “결승전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슛오프에서 내가 관리를 잘하지 못했다. 감정이 너무 과했던 것 같지만 은메달을 따서 정말 기쁘다. 감정이 격해졌지만 멋진 경기였다. 많이 배웠다“고 소감을 전했다.
프랑스 관객들의 응원은 오히려 예드제예스키를 압박했다. 양지인은 “본선 때도 제 바로 뒤가 프랑스 선수였다. 점수가 어떻게 나오든 관중들이 환호했다. 그래서 결선도 똑같겠다고 생각했다. 응원 받는 친구는 저보다 두 배로 떨릴 테니까 저만 열심히 하려고 했다“고 돌아봤다. 물론 마음먹은대로 다 되지는 않았다. 양지인은 “슛오프 가서 엄청 마음이 흔들렸다. 그래도 할 건 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대가 한 발씩 쏘는 결과가 저절로 눈이 가더라. '제발 한 발만 (놓쳐라)' 이러면서 경기를 봤다“고 고백했다.
사실 양지인이 느낀 부담은 다른 곳에 있었다. 우리나라 사격은 이번 대회 성적이 매우 좋다. 양지인에 앞서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가 나왔다. 권총 25m에 함께 나선 김예지(임실군청)가 결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양지인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양지인은 “(나도)파리에 태극기를 올려서 정말 기쁘다. 솔직히 부담이 많이 됐는데 태극기가 올라가니까 싹 씻겨내려갔다. 올림픽에서 좋은 결과를 내서 행복하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금메달을 발판 삼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겠다. 2028년 LA올림픽도 열심히 도전하겠다. 이곳이 저의 시작이라고 봐달라“고 각오를 다졌다.
양지인은 남원하늘중학교 1학년 재학 시절 수행평가로 사격에 입문했다. 남다른 재능을 알아본 중학교 코치가 양지인을 선수의 길로 이끌었다. 2023년 청두 세계대학생 대회에서 권총 25m 개인전 금메달을 따면서 국제 무대에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후 세계사격선수권 1회, 아시아선수권 2회, 아시안게임 1회, 월드컵 3회 등 7차례 굵직한 대회에서 6차례 결선에 올라 우승 2회, 2등 1회, 3등 1회를 기록했다. 올해 1월 자카르타 아시아선수권에서는 세계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한편 한국 사격은 파리올림픽 최고의 효자종목으로 등극했다. 여자 공기권총 오예진(IBK기업은행) 공기소총 반효진(대구체고)에 양지인까지 금메달 3개다. 여자 공기권총 김예지와 공기소총 혼성 박하준(KT)-금지현(경기도청)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와 같은 역대 최다 메달이다.
한동훈 기자 dhh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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