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뉴스
[24-08-12 19:00:06]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대학 배구의 열기가 지방에서 달아올랐다. 2024 대한항공배 전국대학배구 단양·고성대회가 치러졌기 때문이다. U-리그는 여름 휴식기에 접어들었지만, 대학부 선수들은 단양대회와 고성대회를 통해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현장의 분위기는 마냥 뜨겁고 밝지만은 않았다.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대학 팀들에서 우려와 아쉬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특히 그 중에서도 고졸 얼리 드래프티에 대한 대학 팀과 프로 팀의 의견 차이가 극명히 드러났다.
모두가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선수 부족, 이를 해결할 아이디어 등장?
대회가 열리는 동안, 단양과 고성을 많은 배구인들이 방문했다. 대학부 선수 및 코칭스태프는 물론이고, 다가오는 신인선수 드래프트를 위해 대학부 선수들을 점검하러 온 프로팀 관계자들도 다수 있었다. 각자의 입장 차는 존재하지만, 이들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낸다. 바로 “대학부에 선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대학팀의 코칭스태프들은 “쓸 선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프로팀 관계자들은 “뽑을 선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대학팀에서 쓸 만한 선수가 없다고 느낀다면, 프로팀에서 뽑을 선수가 없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히 연결되는 부분이다.
몇몇 대학의 관계자들은 이처럼 선수가 부족한 이유 중 하나로 프로팀들의 고졸 얼리 드래프티 선발을 짚는다. 고등부에서 좋은 재능을 드러내는 선수들이 프로팀으로 직행하게 되면서, 대학팀이 좋은 선수를 수급할 수 없게 되고 전반적인 대학 배구의 수준 저하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그들은 이러한 현 상황이 장기적으로는 대학 배구뿐만 아니라 한국 아마추어 배구의 괴사로 이어질 수 있을 거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이미 고졸 얼리 드래프티들이 매 드래프트마다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지금, 제도적으로 고등학교 선수들의 드래프트 참가를 제한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의견도 다수다.
이에 익명의 대학 감독은 이 문제를 조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 하나를 제시했다. 그는 “프로팀이 드래프트에서 고졸 선수를 뽑으면, 소속을 프로팀 소속으로 하되 대학팀에 1~2년 정도 임대 형식으로 선수를 보내는 제도가 생기면 어떨까 싶다. 그렇게 되면 어차피 프로에서 바로 뛰기 힘든 고졸 선수는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고, 대학팀은 선수를 수급함과 동시에 해당 고졸 선수의 소속 프로팀과도 다양한 교류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어 “프로팀 입장에서도 선수가 실전을 소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서 대학 팀과 긍정적인 커넥션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른바 ‘고졸 얼리 임대 제도’를 제안했다.
그가 말하는 긍정적 교류와 커넥션의 형태란, 고졸 선수를 뽑은 프로팀이 그 선수를 임대 보내는 대학팀의 훈련 시스템이나 환경을 전반적으로 개선시켜주고, 대학팀은 해당 프로 팀의 도움을 받아 전반적인 팀과 리그의 수준을 끌어올려 프로에 갈만한 선수를 더 많이 육성할 수 있는 팀으로 거듭나는 윈-윈 체계를 의미했다.
대학팀과 프로팀의 동상이몽
<더스파이크>는 해당 아이디어에 대한 다른 배구인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이에 타 대학 감독 두 명과 프로팀 관계자 두 명, 그리고 고졸 얼리 드래프티 출신의 프로 선수 한 명에게 해당 아이디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먼저 한 대학 감독은 “원론적으로 매우 좋은 의견이다. 제대로만 시행된다면 모두의 윈-윈이 가능하다. 그러나 프로팀의 제도적 양보 없이는 실현이 불가능한 부분인데, 과연 프로 팀이 양보를 해줄지가 의문이다. 프로팀은 드래프트 일정을 정하는 부분부터도 프로팀과 V-리그를 먼저 생각한다. 그것보다도 더 큰 틀에서의 양보와 협의가 필요한 새로운 제도의 등장을 프로 팀이 반길지는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프로팀에 대한 대학팀들의 신뢰가 그리 두텁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멘트였다.
그러나 이는 프로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프로팀의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일단 대학팀의 선수 육성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 있으므로 그닥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또 해당 제도는 선수 부상이나 이탈이 발생할 시 원 소속 구단인 프로팀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미 프로팀은 대학팀의 편의를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선수 관리 및 육성 능력의 향상이 선제적으로 이뤄진 후에야 해당 제도의 도입을 위한 추가적인 노력을 검토해볼만 한 것 같다. 또 해당 제도는 프로로 직행하고 싶은 고등학교 선수들의 선택권을 앗아가는 제도가 될 위험성도 있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또다른 프로팀 관계자의 시선도 비슷했다. 그는 “아이디어는 좋다. 하지만 대학에서 2년을 뛰는 동안 고등학교 때보다 실력이 퇴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문제다. 지금으로서는 대학에서의 실전을 치르는 것보다 프로에서 A팀 VS B팀의 연습 경기를 치르는 것이 더 수준 높은 경험을 쌓는 길”이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이 관계자는 추가로 과연 고졸 얼리 드래프티가 정말 대학 배구 수준 저하의 주요 원인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품었다. 그는 “고졸 선수들이 바로 프로로 가도, 남는 선수들은 많다. 그런 선수들을 데려가서 혹독하게 훈련시키고, 그들을 프로로 보내는 것이 대학 지도자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2023년 드래프트에서 고졸 얼리 지원자가 3명, 선발된 선수는 2명이었다. 진짜로 이 정도 숫자의 선수들을 프로팀이 데려가는 바람에 대학에 선수가 없다는 건가. 이건 넌센스”라며 진짜 원인은 다른 곳에 있음을 꼬집었다.
반면 고졸 얼리 출신의 한 프로 선수는 나름 긍정적인 의견을 표했다. 그는 “내가 드래프트 될 때 이런 제도가 있었다면 나름 장점이 있었을 것 같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졸 얼리로 프로를 갈 수 있는 선수들이 지금 대학 무대로 가면 수준을 고려했을 때 실전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대학배구 일정의 대부분이 비시즌에 진행되기 때문에 유사시에는 시즌 일정을 팀에서 소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학력이 추가된다는 이점도 있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다만 기술 전수나 선수 관리 부분에서 대학팀과 프로팀이 간극을 좁히는 과정이 꼭 필요할 것 같다. 이게 이뤄지지 않으면 중간에서 선수만 혼란스러운 상황이 나올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또다른 대학 감독 한 명은 조금 다른 포인트에서 우려를 표했다. 그는 “아이디어의 의도가 뭔지는 알겠다. 그러나 학연-지연의 영향력이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해당 제도는 프로팀에 있는 특정 대학 출신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위험성이 너무 크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예컨대 A라는 프로팀이 B라는 고졸 선수를 뽑았는데, 그 선수가 꼭 필요한 학교가 아닌 그 팀 감독의 출신 학교로 그 선수를 보내버릴 수도 있다는 거다. 물론 외국인 감독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꼭 감독의 입김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구단 관계자나 코치도 얼마든지 그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다”라며 여전히 팽배해있는 학연-지연 중심주의를 경계했다.
현장의 목소리들을 종합해봤을 때, ‘고졸 얼리 임대 제도’는 분명 흥미로운 아이디어지만 해당 제도가 실제로 도입되기까지는 대학팀과 프로팀 간의 논의와 협력을 위한 시간이 상당히 많이 소요될 것으로 보였다. 비단 해당 제도뿐만 아니라, 대학 배구와 프로 배구가 상생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안을 찾아내기 위한 허심탄회한 토론의 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글. 김희수 기자
사진. 박상혁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8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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