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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한 열흘 됐을까요?“

최근 KIA 타이거즈 이범호 감독의 입술 오른쪽은 눈에 보일 정도로 벌겋게 부풀어 올라 있다. 흔히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로할 때 생기는 피부 트러블. 이 감독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열흘 전부터 생겨서 가려보려고 수염도 길러봤는데, 잘 안나더라“고 껄껄 웃었다.

호탕한 웃음 뒤엔 불면의 밤의 연속이다.

페넌트레이스가 30경기도 채 남지 않은 시점. 승패마진 +21로 흑자지만 여전히 2위권 팀의 추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연승-연패가 엇갈리면 여전히 추격 당할 수 있는 위치. 매 경기가 살얼음판 같은 상황에서 발 뻗고 잠을 이룰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고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시즌 초반부터 이의리 윤영철이 잇달아 빠지면서 풀가동된 불펜은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 상태. 대체 선발로 출발한 황동하 김도현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시름을 덜었지만, 여전히 매 경기마다 이 감독과 코치진 모두 효율적 마운드 운영을 위해 골몰하고 있다. 타선에서도 맏형 최형우의 부상으로 생긴 중심 타선 공백을 채워야 하고, 나성범 이우성 등 부상 복귀자 뿐만 아니라 박찬호 김선빈 등 잔부상을 달고 있는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도 신경써야 한다. 17일 잠실 LG전에서도 김태군이 3회말 수비 도중 오스틴 딘의 스윙 과정에서 배트에 왼손등을 맞아 교체되는 일이 발생했다. 115경기 117개로 10개 구단 중 1위인 수비 실책 역시 이 감독과 코치진의 여전한 숙제다.

하루에도 수없이 파도치는 마음. 하지만 이 감독은 선수들에게만은 말을 아낀다. 훈련 도중 “좋아“, “잘하고 있어“ 등 파이팅 구호를 내는 정도. 16일 승리 요건에 아웃카운트 2개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교체한 선발 투수 김도현에겐 “(승리를)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기도. 이 감독은 “스트레스는 나와 코치진만 받으면 된다. 선수들은 그저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준비한 실력을 그라운드 안에서 펼쳐 보이기만 하면 된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선수들이 알고 있고, 내가 말한다 한들 또 다른 스트레스 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이런 마음가짐의 원천은 V12 열망과 일맥상통한다.

스프링캠프 도중 막내 코치에서 사령탑으로 승격한 초보 감독. 하지만 1월 팀 전략 세미나에서 문제점과 개선점을 조목조목 짚으면서 V12로 가는 방안을 제시했던 자신의 신념을 하나씩 관철시키고 있다. 이런 이 감독의 철학은 선수단 활약과 시너지를 만들며 지금의 성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KIA는 최대 승부처로 여겼던 LG와의 주말 3연전 원정에서 일찌감치 위닝 시리즈를 확보했다. 2위 그룹과 승차를 더욱 벌리며 굳히기에 시동을 걸었다. 이 감독은 “모든 선수들이 이번 시리즈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승리라고 하는 값진 결과물을 얻었다“고 승리의 공을 제자들에게 돌렸다. 안방 광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선 그간의 스트레스를 잊고 조금이나마 단잠을 청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잠실=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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