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뉴스
[24-08-20 08:07:00]
[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목표는 10위, 꼴찌 아니고 빛나는 '세계 10위'입니다.“
2024년 파리패럴림픽 개막이 채 열흘도 남지 않았다. 28일부터 9월 8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이번 패럴림픽에 한국은 역대 최다인 17개 종목에 총 83명의 선수가 출전한다. 대한장애인체육회는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5개 이상 획득해 종합순위 20위권 진입을 목표로 삼고 있다.
메달 목표를 세우는 건 당연하다. 선수들이 패럴림픽을 위해 흘린 땀의 결과물을 평가하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럴림픽은 올림픽과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장애와 편견에 맞서 싸워 국가대표의 명예를 쟁취한 '영웅'들이 나서는 영광의 무대다..
▶딸의 생활기록부를 채우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선 김황태
이런 패럴림픽의 특징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선수가 있다. 바로 장애인 트라이애슬론 스포츠등급 PTS3에 출전하는 김황태(47·인천시장애인체육회)다. 그의 인생은 죽음의 위기를 극복한 뒤 피땀을 쏟아내며 한계와 싸워 이긴 '영웅서사'를 연상케 한다. 불의의 사고로 장애 판정을 받기 전의 김황태는 원래 보통 사람 이상의 강한 체력과 피지컬을 갖고 있었다. 해병대 789기로 군 복무 시절에는 '30분 윗몸 일으키기' 사령부 2등상을 수상한 적도 있다. 강철 체력의 소유자였다.
24년 전인 2000년 8월, 최악의 사고를 겪었다. 전선 가설 작업 중 감전 사고로 죽음의 위기에 처했다. 양팔을 절단하고도 오랫동안 중환자실에서 회복해야 했다.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양팔을 잃은 충격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삶의 의지를 잃은 채 술에 의존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그런 김황태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건 운동이었다. 사고 1년여 후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견딜 수 없어 무작정 달리기부터 시작했다. 원래 강인했던 체력 덕에 달리기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양팔 없는 러너'를 보는 세상의 시선은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도 묵묵히 달렸다. 2003년에 처음으로 마라톤 풀코스를 4시간 6분대에 완주하며 세상 밖으로 나오는 데 성공했다.
본격적으로 패럴림픽의 꿈을 꾸게 된 건 2004년에 태어난 딸 때문이다. 김황태는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당시에는 생활기록부에 '아버지 직업난'이 있었다. 그런데 쓸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운동에 매달렸다. '국가대표'라는 네 글자를 넣어주고 싶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간단하게 말했지만, 그 여정은 결코 간단치 않았다.
김황태의 처음 목표는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이었다. 주변에서 노르딕스키를 권유했고, 순조롭게 국가대표에 가까워지는 듯했다. 그러나 훈련 도중 무릎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해 스키 국가대표의 꿈이 무산됐다. 김황태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태권도로 종목을 바꿔 2020년 도쿄패럴림픽을 노렸다. 결국 '국가대표' 타이틀은 따냈다.
김황태는 “태권도 국가대표가 되고 나니까 이번에는 생활기록부에 아버지 직업을 넣는 게 사라져버렸더라. 조금 아쉬웠다. 게다가 도쿄대회에선 내 장애등급(PTS3, 중대한 근육 손상 및 절단) 분야가 채택되지 않으면서 또 패럴림픽에 나가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좌절→극복→좌절→극복'의 패턴이 계속 김황태의 인생을 따라다녔다.
김황태는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이번에는 철인 3종으로 종목을 또 바꿨다. 그 사이 딸은 아빠가 운동하면서 다치는 게 싫다며 '집에만 계시라'고 할 정도로 다 큰 어른이 되어버렸다. 김황태는 “딸은 말렸지만, 그래도 패럴림픽에 꼭 나가고 싶었다. 패럴림픽 출전권 공식 발표가 6월말이라 마지막 대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확정되고 나니 홀가분하고 기분이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김황태는 지난 6월 29일 국제트라이애슬론연맹(ITU)이 발표한 패럴림픽 출전권 최종 랭킹에서 세계 9위를 기록하며 막차로 패럴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이로써 김황태는 대한민국 장애인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철인 3종에서 패럴림픽에 출전하는 역사를 쓰게 됐다. 딸을 위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출발해 20년 만에 만든 값진 성과였다.
▶자랑스러운 세계 10위, 나를 보고 세상 밖으로 나오길
김황태는 파리패럴림픽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기 위해 다시 훈련의 고삐를 당겼다. 패럴림픽 철인 3종은 수영 750m, 사이클 20㎞, 육상 5㎞ 기록을 합쳐 순위를 가린다. 비장애인에게도 험난한 코스다. 김황태는 “선수생활을 계속하겠지만, 패럴림픽은 아마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그래서 홀가분하게 즐기면서 다녀올 생각이다. 골인 지점 마지막 100m에서 마음껏 즐기겠다“고 말했다.
김황태가 예상하는 패럴림픽 순위는 '세계 10위'. 파리패럴림픽 철인 3종 종목에 10명이 출전하는데, 그 중에서 '꼴찌'라고 한다. 그는 “장애인 철인 3종은 기록차이가 명확해서 앞 순위 1명을 따라잡기도 어렵다“고 했다. 김황태는 '꼴찌'라는 표현을 부정했다. 그는 '10위면 꼴찌 아닌가'라는 기자의 말에 “아니요. 꼴찌가 아닙니다. 세계 10위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장애인 철인 3종 세계랭킹 10위는 곧 '세계에서 10번째로 강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중중 장애를 지닌 채 철인 3종에서 세계 톱10을 차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위대한 업적이라는 것이다.
관건은 수영이다. 김황태는 육상과 사이클만 보면 세계 2~3위권으로 메달 경쟁을 해볼 만하다. 그러나 늘 수영에서 기록을 까먹는다. 양팔이 없는 김황태에게 수영은 너무 어려운 난관이다. 심지어 대회가 열리는 파리의 센강은 수질 문제로 올림픽 때부터 많은 문제가 생겼던 장소다. 김황태는 “솔직히 나는 수질은 상관없다. 작년 이벤트대회 때 센강에서 수영해봤는데, 나쁘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나는 센강의 강한 유속이 걱정된다. 물 속에서 나오지 못할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만에 하나 유속과 수질 문제로 철인 3종에서 수영이 제외돼 '듀애슬론(철인 2종)' 경기로 진행된다면 김황태가 메달권에 들 수도 있다. 김황태는 “대회 조직위원회가 안전 문제 때문에 센강 하류에서 철인 3종경기를 개최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듀애슬론으로 바뀌면 좋겠지만, 아니더라도 할 수 없다. 센강에서 잘 헤엄쳐 나오는 게 목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골인하는 순간 '고생했다 김황태'를 외치고 싶다. 즐기면서 10위를 하겠다“면서 “모든 장애인들이 나를 보고 희망을 얻고, 동기부여를 받아 세상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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