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뉴스
[24-08-21 15:59:06]
“최고, 최고입니다. 요새 그 선수 때문에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이항범(43‧168cm) JBJ 바스켓볼 클럽 대표는 일본의 단신가드 카와무라 유키(23‧172cm)를 언급하기 무섭게 말이 많아졌다. 간혹 특정 선수에 대해 물어봤을 때 단답형으로 짧게 대답하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앨런 아이버슨, 카이리 어빙 등 그가 좋아한다던 NBA 스타들에 대해서도 이 정도로 긴 이야기는 듣지못했다. 본인도 인정했다. 카와무라만 떠올리면 이말 저말이 막 쏟아진다고.
2004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7순위로 KCC에 입단했던 이대표는 전체 1순위로 지명됐던 양동근보다도 더 높은 관심을 받았다. 고졸 출신, 일반인 자격으로 드래프트 참가, 배우 고 이병철의 차남 등 언론에서 흥미를 가질만한 요소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특히 KBL 최단신 선수(당시 기준)라는 부분의 화제성이 컸다.
이항범의 지명은 인간승리에 가까웠다. 신장에서 오는 핸디캡은 치명적이다못해 선수로서 불가능하다는 혹평에 시달렸고 고교 졸업후 일반병으로 군대까지 갔다가 돌아온 상태인지라 실전감각 등에서도 현저히 떨어져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팬과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고졸 출신 168cm 최단신 선수가 장신자들의 무대 KBL에서 생존할 수 있는가에 시선이 모아졌다.
물론 이같이 무수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프로지명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실력이었다. 신장을 극복할만큼 빼어난 기량을 갖추고있다는 평가를 받았고 프로에서 어떻게 담금질을 하느냐에 따라 센세이션을 일으킬 가능성도 예상되는 분위기였다. 아쉽게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이항범은 프로 데뷔전 조차 치르지못한채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만다.
이후 인터뷰 등에서도 밝혔다시피 이일은 이항범 개인에게도 평생의 한이 되고 말았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절대 그런 선택은 하지않겠다’고 강조할 만큼 후회가 컸다. 그 때문인지 후학양성을 위해서 누구보다도 열심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 이대표의 시선을 온통 빼앗아버린 선수가 있으니 다름아닌 카와무라다.
초단신 농구선수가 농구를 배우고 지속하는 과정은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험난할 수 밖에 없다. 다른 누구보다도, 같은 초단신이었던 본인이 더 잘안다. 그래서 더 카와무라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끝까지 포기하지않고 부딪히고 또 부딪힌 끝에 세계 무대에서도 눈에 띄는 선수로 성장하고있기 때문이다.
”편견을 깨려면 증명이 필요한데, 카와무라는 증명을 하고있어요“
Q.요새 카와무라가 너무 뜨거워요.
하하핫…, 그러게요. 사실 이 선수에 대해서 확실하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주변 분들 덕분이었어요. 같은 단신이라서 그런지 카와무라가 활약할수록 연락을 자주 주시더라고요. 그 정도 신장의 선수가 맹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저를 떠올리시나 봐요. 아! 오해는 하지마세요. 제가 그 정도 실력자였다는 것은 절대 아니니까요. 다만 카와무라는 단신 중에서도 단신이잖아요. 저도 그랬고요. 그러다보니 제가 생각나는 분들이 많으셨던 듯 싶어요. 솔직히 처음에는 그냥 키 작고 똘똘한 가드 한명 나왔다 보다. 그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어요. 하지만 주변 분들의 반응이 워낙 뜨거워서 저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는데 우와…, 이건 정말.
Q.완전 끝내주고 있죠?
그럼요. 그럼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잖아요. 지금도 엄청나지만 나이도 어린 만큼 얼마나 더 성장할지 예측이 안되요. 그 사이즈로 이 정도 실력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노력을 했겠어요. 그런만큼 멘탈도 장난아닐거고요. 부상만 없다면 매번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일본 선수다 뭐다를 떠나서 동양의 조그만 가드가 이 정도로 활약해주는 모습에서 대리만족까지 느끼고 있습니다.
Q.제가 대표님 입장이라고해도 대리만족이 느껴질 것 같아요.
그러게요. 주변에서 ‘너가 만약 프로에서 제대로 뛰어서 적응했더라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적지 않으세요. 앞서도 얘기했듯이 당연히 카와무라급은 힘들었겠죠. 다만 작은 선수가 코트에서 장신들을 상대로 과감하게 플레이하는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시는 분들도 계셨을 것이라는 말이에요. 저도 그래서 프로 생활을 못한 것에 대해서 응어리가 있어요. 잘하고 못하고는 둘째치고 그런 플레이는 어느 정도 보여줄 수 있었을텐데…라는 것요.
Q.국내 단신 가드 중 아주 잘했던 선수로는 김승현이 있어요. 이른바 최고의 도우미였죠. 일반적인 지도자들이 단신 가드에게 바라는 최고의 모습이었고요. 하지만 카와무라는 도우미 역할은 물론 주득점원도 겸하고 있어요.
맞습니다. 이래저래 기존 농구의 틀을 깨는 선수라고 할 수 있죠. 말씀하신대로 단신 가드에게는 바라는 플레이상이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있어요. 득점은 키 큰 선수들이 할테니 잘 도와주라는 것이죠. 단신 가드가 돌파를 하거나 슛을 던지려 하면 ‘네가 뭔데 그렇게 플레이하냐’고 혼나기 일쑤였죠. 저 역시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는 스타일이었던지라 농구하는 내내 그런 지적을 수없이 받았습니다. 좋게 말하면 무리하지 말라는 것인데, 그 기준을 모르겠어요. 그냥 키 작은 선수가 적극적으로 공격을 하면 무엇을 하든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무리하는 것으로 보이나 봐요. 더불어 실전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연습이나 훈련시에는 무리한 공격 좀 하면 어떻습니까. 그렇게 하면서 발전하는 것 아닐까요. 지금 프로에서 득점 좀 한다는 선수들, 다 그런 무리한 플레이를 경험하면서 성장했습니다. 쟤는 무리해도 되고 나는 안된다? 그것도 어폐가 있죠. 자꾸 해봐야 스킬도 늘고 실전에서 써먹을 것 아닙니까. 공간이 나오면 공격하고 아니면 빼주면 되죠. 가드가 공격력이 좋으면 팀에도 무조건 플러스입니다.
Q.이론상으로는 키작은 선수도 득점을 잘할 수 있어요. 하지만 편견의 벽은 너무도 높은게 사실이죠. 그런 편견을 깨려면 증명이 필요한데, 카와무라는 증명을 하고있어요.
당연하죠. 지금 NBA에서 혁명가로 꼽히는 선수들 중 상당수가 증명을 통해 편견을 깼잖아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3점슛 위주로 경기를 지배한다? 운동능력 떨어지는 백인 센터가 정확한 슛과 패싱센스를 앞세워 리그 넘버1급으로 활약한다? 이런 것 상상도 못했을거에요. 하지만 스테판 커리와 니콜라 요키치가 해냈잖아요. 물론 단신가드 그것도 초단신으로 분류될만한 선수는 더 높은 난이도에 봉착할 수 있겠죠. 하지만 카와무라는 올려다보기보다는 넘을 생각으로 플레이를 했고 실제로 결과로 나오고 있습니다. 키 작은 득점 머신하면 앨런 아이버슨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사실 그 선수도 특별한 케이스였으며 그래도 180cm는 살짝 넘었단 말이에요. 뭔가 작은 선수가 득점을 잘하려면 그래도 최소 180cm은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기준선이 있었어요. 타이론 보거스나 스퍼드 웹도 공격적인 부분에서는 한계가 있었잖아요. 하지만 카와무라는 170cm초반대 신장으로 또 다른 영역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틀이 다시 한번 깨지고 있는 상황이죠. 그래서 저도 요즘 수업하면서 카와무라 얘기를 아이들에게 종종합니다.
Q.무슨 얘기를 하실까요?
그전부터도 ‘키가 작다고, 뭐가 안되서’ 등 남들이 정해놓은 것에 맞춰서 미리 한계를 긋지말라고 늘 얘기를 했어요. 그렇게 다 안될 것 같으면 되는 것은 뭔데요. 어려운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나아지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하는 것이잖아요.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남들이 영혼없이 던지는 평가에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좋겠어요. 고집불통같이 귀를 막고있으라는 소리는 아니에요.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되 내 노력을 우선적으로 믿으라는 소리죠. 마침 카와무라라는 최고의 모델이 나왔어요. ‘봐봐, 되잖아’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된거죠.
”열려있는 사고와 시스템이 인재를 만듭니다“
Q.일부에서는 국내농구의 미래가 어두운 이유중 하나로 저출산을 꼽기도해요. 인구가 줄어드는만큼 농구를 하려는 장신 유망주들이 줄어들 것이다는 것이죠. 하지만 카와무라처럼 신장과 관계없이 잘하는 선수가 많아지면 상당 부분 상쇄될 것 같기도해요.
그럼요. 농구에서 키 크면 유리하다는 것 누가 모릅니까. 같은 조건이면 아니 다소 능력치가 떨어져도 사이즈에서 먹어주면 그 이상으로 커버되는 것이 농구라는 스포츠입니다. 하지만 기준을 무조건 ‘키’로만 맞추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작지만 잘하는 선수도 많거든요. 하지만 현실은 쉽지않아요. 중고등학교 시절만 보더라도 ‘너는 키가 이 정도 밖에 안되니까 선수하기는 힘들겠다’, ‘여기서 이만큼은 더 커야 농구로 진학이 가능할거야’ 등 실력보다는 키를 앞세우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누구보다도 많이 겪어본 케이스죠. 키고 뭐고 그냥 정당하게 경쟁시켜서 못하면 도태되는 것이고 잘하면 기회를 더 주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단신 선수가 장신들과 공정하게 경쟁을 해서 밀려났다면 억울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키만 비슷했으면 내가 더 잘했을텐데…’ 의미없는 가정입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무기가 같을 수는 없어요. 각자 가지고있는 능력치를 최대한 발휘해서 경쟁하는 것이죠. 이겼냐. 졌냐. 승부의 세계는 매순간 결과로 판가름 날 뿐입니다. 단점을 아쉬워할 시간에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들로 어떻게 싸울까에 집중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Q.그렇죠. 가지고 있는 무기의 불평등은 어떤 분야에서도 생겨날 수 있는 부분이고 결국 싸워서 이기고 증명하면 되는 것이죠.
맞습니다. 이런 부분을 변화시키려면 결국에는 증명을 해야하고 그 증명이 변화를 가져오죠. 아쉽게도 농구에 있어서 단신의 증명은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저 역시 증명하고 싶어했고 기회를 얻었지만 무대에 서지못했어요. 지금까지도 거기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 커요. 그런데 카와무라는 증명을 하고 있지않습니까. 저하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고 심지어 일본 선수지만 같은 초단신 농구인으로서 너무 고마운 이유입니다. 물론 카와무라 혼자 잘한다고 당장 드라마틱한 변화가 찾아오지는 않겠죠. 하지만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좁은 문을 뚫었습니다. 누군가 거기에 영향을 받은 또 다른 단신들이 행보를 이어받는다면 조금씩 넓어지지 않을까요.
Q.앞서도 얘기했다시피 단순히 키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너는 안돼’라며 주변에서 단정 지어버려서 재능을 꽃피우지못한 케이스도 많을 듯 싶어요.
아주 많죠. 당장 저부터가 그랬으니까요. 키에 꽂혀서 실력을 보질않아요. 왜 농구를 하고 있는거야. 다른 종목하면 어떠니부터 온갖 편견이 계속해서 비수처럼 가슴에 꽂히죠. 저같은 경우는 그나마 농구를 너무 좋아했고, ‘내가 왜?’라는 마인드로 치열하게 싸워왔지만 안그런 친구들도 많을거란 말이에요. 실상 재능은 뛰어나지만 주변에서 하도 그렇게 말해대면 ‘난 농구를 하면 안되는거구나’라고 어느새 본인까지 포기모드로 돌아서기 일쑤죠.
Q.단신 선수가 저평가받는 이유중 수비문제가 크잖아요.
그렇죠. 백번양보해서 공격은 어찌어찌한다 해도 수비는 어떻게할건데가 단신 선수를 바라보는 가장 큰 문제의 핵심이죠. 저 역시 프로 지명받았을 때 디펜스에서 한계가 분명할 것이다는 얘기가 많았었고요. 카와무라를 보세요. 수비에서 크게 문제를 안보이잖아요. 본인의 노력에 더해 팀 역시 현대 시스템에 맞게 받쳐주고 있거든요. 키작은 선수와 수비는 해묵은 문제이기는 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좋은 재능이 있는데 그 이유로 선수를 안할 수는 없잖아요. 선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가고 팀도 이를 커버할 수 있는 전략 등을 만들어가는거죠. 카와무라가 뛰고있는 팀처럼요. 그렇게하다보면 개인, 팀 디펜스도 한층 발전하지 않을까요. 빅맨급 신장으로도 가드, 스윙맨으로 뛰는 시대인데 단신을 바라보는 시각과 시스템도 바뀌어야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Q.그런 점에서는 일본 스포츠 시스템에 대해서 배울게 많은 것 같아요.
그럼요. 전반적인 부분에 걸쳐서 일본은 우리와 정서적으로 좋지 않은 관계에 있지만 배울 것은 배워야죠. 그래야 더 발전하고 이길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일본 스포츠 관계자들과 미팅을 한적이 있어요. 그들은 신체조건이나 그런 것을 따지지 않고 현재 있는 자원들로 어떻게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을까에 초점을 두고 계획을 수립한다고해요. 본래 소수의 타고난 사이즈와 신체 능력을 가진 선수들은 뭘 특별히 안해도 눈에 팍팍 띕니다. 성장시키기도 편하고요. 때문에 시스템이라는 것은 신체적인 이점이 상대적으로 적거나 평범한 선수들을 키우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면 생각지도못한 원석도 발견되고 선수층 자체가 넓어지게 되죠. 특별한 일부 선수들 또한 그러한 테두리에서 더더욱 성장할 수 있겠죠. 이게 바로 시스템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싶어요.
Q.개인적으로도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을 듯 싶어요.
맞아요. 저같은 경우 키가 작은 것을 약점으로 계속 지적받았잖아요. 약점이라는 것은요. 지적을 했으면 그것을 채울 방법도 알려줘야해요. 그런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않더라고요. 작게 태어난 것을, 키가 자라지않은 것을 제가 어떻게 바꾸겠어요. 현재 제 키로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궁리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수 밖에요. 일본은 그런 부분이 참 많이 깨어있고 발전했어요. 이런 노력과 경험이 쌓이다보면 현재를 넘어 미래까지도 더욱 튼튼해지는 것이죠. 카와무라같은 선수도 그냥 튀어나온게 아니에요. 그런 좋은 시스템하에서 원석을 놓치지않고 가공까지 잘 이뤄낸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Q.일본의 농구 수준이 이렇게 올라온 것도 어찌보면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봐도 맞겠네요.
그럼요. 한때 일본이 각 구기종목에서 우리보다 밀리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야구 정도를 빼고는 축구, 농구 등에서 우리가 앞서갔다고 보는게 맞겠죠. 하지만 일본이 우리를 추월할 날도 멀지않았다고 전망하는 이들도 적지않았어요. 당장 성적이 나고 특별한 스타가 나와서가 아니에요. 전반적인 스포츠 시스템과 생활체육 환경 그리고 길게 내다보고 꼼꼼하게 한발한발 다듬어가는 모습 때문이었어요. 농구를 하는 층이 두터워지니까 좋은 선수도 많이 발굴되고 거기에 맞춰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이 이뤄지고 있죠. 저도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이런 부분을 많이 배워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싶어요. 우리도 재능있는 선수는 정말 많습니다. 카와무라의 탄생을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닌 성장의 롤모델로 삼는다면 한국판 작은거인들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FIB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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