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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4시즌에 여러 팀의 운명을 뒤바꾼 남자 손태훈이 이제는 원하는 대로 운명을 개척하려고 한다.

도드람 2023-2024 V-리그 남자부의 정규리그 우승팀은 정규리그 종료 직전까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3월 16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치러진 삼성화재와 우리카드의 6라운드 맞대결 결과에 모든 것이 결려 있었다. 우리카드가 승점 2점 이상을 획득하면 우리카드의 우승, 그렇지 못하면 대한항공의 정규리그 우승이 확정됐다.

객관적인 전력과 승리에 대한 간절함에서 우리카드가 우위에 있었기에, 당일 경기장에는 우리카드의 정규리그 우승 상황을 대비한 많은 준비가 이뤄져 있었다. 그러나 이변이 일어났다. 안방에서 상대방의 우승 세리머니를 지켜볼 수 없었던 삼성화재가 투지를 발휘하며 우리카드를 풀세트 접전 끝에 꺾었다. 그 중심에는 손태훈이 있었다. 5세트 13-12에서 매치포인트를 만드는 속공을 터뜨렸고, 15-14에서는 오타케 잇세이의 백어택을 블로킹으로 잡아내며 경기를 끝냈다. 손태훈의 손이 대한항공과 우리카드의 운명을 뒤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지난 시즌 누군가에게는 킹메이커였고, 누군가에게는 통곡의 벽이었던 손태훈은 이제 다른 팀의 운명이 아닌 소속팀 삼성화재의 운명을 원하는 대로 개척하려고 하고 있다. 12일부터 15일까지 경남 하동 일대에서 진행된 삼성화재의 하계 전지훈련에서 손태훈은 어느덧 팀내 최고참급에 속하는 선수가 됐음에도 최선을 다해 훈련에 임했다. 2일차 8.8km 코스 러닝 기록측정에서 상위권에 해당하는 5위(47:23.92)를 차지했을 정도였다.

휴식 시간에 잠시 <더스파이크>와 만난 손태훈은 “하동은 어렸을 때 많이 와서 놀았던 곳이고, 친구들도 많은 곳이다. 훈련으로는 처음 와봤는데, 훈련하기에도 환경이 좋은 것 같다”며 반가운 곳 하동에서의 훈련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는 “처음부터 순위권을 노리고 뛰었는데, 갈수록 젊은 친구들이 치고 나가더라(웃음). 그래서 그냥 쉬지만 말자고 생각하면서 뛰었는데, 생각보다 기록과 순위가 잘 나왔다”며 기록 측정 5위를 기록한 비결도 함께 전했다.

이후 손태훈과 지난 시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2023-24시즌은 어떤 시즌이었는지 묻자 손태훈은 “시즌 종료 후에 FA가 되는 시즌이었기 때문에 많은 준비를 하고 출발하려고 했다. 하지만 무릎 연골 수술을 받아야 해서 원하는 만큼 충분한 준비를 하진 못했던 것이 아쉽다. 좋은 흐름을 탔던 시기도 있긴 했지만 비시즌을 원하는 대로 보내지 못한 여파가 시즌 후반부에 드러난 것 같다”며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상술한 6라운드 우리카드전은 손태훈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그의 역대급 막바지 활약이 빛났던 경기로 남았다. “우리카드가 이기면 우리 홈에서 축포를 터뜨리는 경기였다. 충무체육관에서 그간 상대 팀이 우승 축포를 터뜨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들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선수들이 똘똘 뭉쳤다”고 당시를 돌아본 손태훈은 “우선 매치포인트를 만든 속공 같은 경우에는 상대가 요스바니 에르난데스를 견제할 것 같아서 (노)재욱이 형한테 공을 올려달라고 했다. 미팅이 정확하진 않았는데, 재욱이 형이 높은 타점에서 잘 뿌려준 덕분에 득점이 됐다”며 속공 상황을 먼저 설명했다. 


삼성화재의 2023-24시즌 마지막 승리를 만드는 득점이자 우리카드와 대한항공의 운명을 뒤바꿨던 블로킹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손태훈은 “잇세이의 공격 스타일이 높이보다는 스피드를 살리는 스타일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그냥 손을 빨리 집어넣자는 생각만 하면서 떴다. (김)정호가 사이드에서 자리를 잘 잡아준 덕분에 블로킹을 잡았다”고 블로킹 상황을 돌아봤다.

그렇게 손태훈의 손으로 2023-24시즌의 정규리그 우승팀이 대한항공으로 결정된 뒤, 손태훈은 삼성화재에서 함께 뛰었던 김규민과 김형진에게 감사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김)규민이 형한테는 ‘사랑한다, 맛있는 거 사주겠다’고, (김)형진이한테는 ‘고맙다’고 연락이 와있더라”라며 당시 받았던 연락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사실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며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이제 손태훈은 다른 팀이 아닌 삼성화재의 우승에 일조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할 참이다. “FA 계약을 맺으면서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 연차로 봐도 이제 그래야 할 연차이기도 하다”고 밝힌 손태훈은 “다만 욕심은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마음을 내려놓고 결과보다는 과정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팀의 미들블로커들 모두가 서로를 도우면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고, 내가 그 과정을 주도하고 싶다”는 의젓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손태훈의 정신적 성장은 개인 목표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속공과 블로킹에 더더욱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코트 위에서 하는 모든 플레이들이 중요하다. 하지만 미들블로커의 본질은 속공과 블로킹에 있는 건데 내가 그 동안 다른 것들에 너무 집착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보완할 지점을 냉철하게 짚는가 하면, “그간 남을 의식하면서 소극적인 플레이를 한 적이 많은 것 같다. 미움 받을 용기가 부족했던 거다. 이제는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또 보여주고 싶다”며 이제는 어엿한 베테랑다운 강인함이 느껴지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한편 손태훈은 까다로운 적에서 든든한 동료가 된 마테이 콕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는 “적으로 만났을 때도 타점이 엄청난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범실이 많지 않고, 기술적인 공격을 구사할 줄 아는 선수라고 느꼈다.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도 장점이었다. 아마 우리 팀의 시스템에 잘 녹아들 거라고 생각한다”며 마테이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끝으로 손태훈은 “삼성화재에서 아직 봄배구를 경험해보지 못했다. 팬 여러분들도 저만큼 많이 기다리고 계신 걸 알고 있다. 이번 시즌에는 꼭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면서 봄배구에 진출하겠다”며 담백한 포부를 전했다. 2023-24시즌의 킹메이커였던 손태훈이 자신의 바람대로 2024-25시즌에 대전의 봄배구, 나아가 대전의 대관식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사진_하동/김희수 기자,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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